1955년 9월 13일, 당시 대구 매일신문사 3층 편집국.
창밖을 내다보고 있던 젊은 기자 몇몇이 당시 최석채 주필에게 말했다.
'선배님, 저기 땡볕에 어린 학생들이 높은 사람 온다고 깃발 들고 몇 시간째 서 있는데, 말도 안 되는 짓 하고 있는 거 한번 쓰시지요.'
신문사 앞 길거리에는 어린 학생들이 높은 분이 탄 차가 지나갈 때 깃발 몇 번 흔들어 주기 위해 아침밥도 못 먹고 불려와 도열해 있었다. 대통령이나 외국 원수도 아닌 자국(自國)의 대사급 관리 하나 오는 데까지 자유당 고관들은 학생들을 동원, 아첨에 이용했다. 그래서 나온 사설이 바로 '학도를 도구로 이용하지 말라'였고 다음날 부패 정권의 폭도들은 대낮에 신문사 인쇄 시설을 때려 부수는 테러를 자행했다.
55년이 지난 지금, 똑같거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아첨 고관들 대신 일부 교육 지도자들로 주역이 바뀌었을 뿐 학생들을 대상으로 좌파 지지 세력에 '아첨'하는 포퓰리즘을 저지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과 의심이 되살아나고 있어서다. 학생들에게 시험을 치지 않아도 된다며 '체험 학습 참가'라는 속 보이는 꼼수로 순진한 아이들의 세계에까지 편을 갈랐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국 약 200만 초'중'고 학생들을 대상으로 빚어진 일이다. '학업 성취도 평가' 시험이란 배우고 가르친 학습의 효과가 얼마만큼 성취됐는지를 평가해 개인 차에 따른 취약점을 진단해 내고 처방해서 학력을 올려주는 중요한 시험이다. 그래서 정부(교육과학기술부)는 반드시 치르라는 공문을 보냈고 거꾸로 진보(실은 좌파) 교육감이 버티고 앉은 교육청은 시험을 거부해도 결석 처리하지 말라는 반대 공문을 보내 딴죽을 걸었다.
어린 학생들로서는 '어른들이 도대체 왜 이래?'라는 불신을 가질 수밖에 없고 시험 치는 아이와 안 치는 아이 간에는 혼돈과 반목의 틈이 갈라졌다. 지금 전 세계가 어떤 교육철학과 미래 비전으로 치열하게 치고 나가는지 눈곱만큼이라도 안다면 그처럼 애들을 이념 투쟁이나 보수, 진보의 힘겨루기에 끌어넣어 이용하지는 못할 것이다.
우리가 연간 27조 원의 교육비를 쏟아붓고 7조 원의 유학비로 39만 명의 해외 유학'연수생을 내보내면서도 정작 글로벌 100위 대학에는 끼지도 못하고 있을 때 인구 430만 명의 싱가포르는 글로벌 100위 대학에 2개교나 넣었다. 그 저력의 해답은 리 센륭 총리의 말 속에 있다. '민주주의와 획일적 평등주의의 환상에 사로잡혀 엘리트 교육을 포기하고 교육 평준화를 고집하면 국가의 열등화와 사회의 하향평준화를 초래, 망국의 길로 접어들게 된다.'
중국은 어떤가. 그들은 '111혁명'이란 걸 시작한 지 오래다. 전 세계 100위권 대학, 연구기관에서 1천 명의 인재를 끌어와 100개의 초일류대학을 만든다는 프로젝트다. 그런 중국의 교육철학은 33년 전 덩샤오핑(鄧小平)이 이끈 '과학 및 교육공작회의'에서 시작됐다. 당시 그의 질타는 오늘날 우리 좌파 교육자의 모나고 뒤틀린 의식을 호통치는 듯하다. '허황된 이론으로 입씨름하기 좋아하는 사람들, 혁명이 뭔지도 모르면서 말끝마다 혁명이니 뭐니 떠들어대며 되지도 않은 연합(연대) 타령이나 하는 자들은 교육공작회의에 참석할 자격도 없다.'
세계가 그렇게 돌아가는데 진보니 보수니 갈라서서 아이들까지 이 교실에선 검다고 가르치고 저 교실에선 희다고 가르치며 이념 싸움에 끌어넣고 있다. 뛰어난 인재 발굴과 양성에 써야 할 피 같은 세금은 멀쩡한 부잣집 아이들까지 공짜 밥 먹이는 무상급식 포퓰리즘에 퍼 없앤다. 교육자가 시험을 안 쳐도 좋다고 가르치는 나라에서 헌법 백 번 고치고 세종시 열 번 옮겨봐야 망국으로 간다. 무엇을 얻기 위해, 어떤 세력에 아첨하려고 학생들을 모르모트처럼 실험하며 이념 집단의 다툼에 끌어들여 분열시키는가. 55년 전의 행위를 되풀이하려는 당신들은 참으로 '나쁜 어른들'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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