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야 놀자] 늦은 밤 신호등 꺼놓은 이유는

늦은 밤 한적한 거리를 지나다 보면 가끔 신호등이 작동하지 않고 그저 노란색 불만 깜빡이는 것을 볼 수 있다. 어두운 밤중에 신호등을 꺼놓았으니 위험천만한 상황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경찰서에 가서 제대로 작동시켜 달라고 하면 경찰관은 어떻게 대답할까. 아마 경찰관의 대답은 "일부러 그렇게 해놓았으니 걱정 마세요"일 것이다. 한적한 밤거리에 신호등을 끈 것은 언뜻 보면 위험한 일이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합리적인 행동일 수 있다. 교통질서를 지켜주는 신호등은 계속 작동되고 있어야 좋을 것 같지만, 신호등이 우리에게 혜택만 주는 것은 아니고 비용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호등의 비용이 이익보다 더 클 때에는 굳이 작동시킬 필요가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신호등이 우리에게 주는 비용은 어떤 것일까. 먼저 떠오르는 것은 신호등을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종의 매몰비용이기 때문에 신호등 작동 여부를 판단할 때는 감안하지 않는다. 그보다 사람들이 신호를 지키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을 비용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러나 늦은 밤 사람이 거의 없는 거리에서는 상황이 달라질 수 있다. 왜 그럴까. 첫째 사람들이 신호등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호등이 있어도 교통사고를 방지하기 어렵고 그만큼 신호등이 주는 이익도 줄어든다. 둘째 사람들이 신호등을 잘 지킨다 하더라도 밤에는 신호를 기다리는 시간비용이 낮보다 큰 경우가 많다. 결국 신호등의 이익보다 비용이 더 커지게 되고 이때는 차라리 신호등을 작동시키지 않는 게 낫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성격이 매우 신중한 영희와 성격이 급한 철수 두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자. 두 사람 모두 길을 건너려고 하는데 시간대가 밤중이라고 하자. 신중한 영희는 낮보다 주위를 많이 살피고 파란 불이 들어와도 금방 길을 건너지 않는다. 밤에는 자동차들이 더 빨리 달리기 마련이고 운전자가 신호나 사람을 잘못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성격이 급한 철수는 일단 차만 없으면 빨리 건너가는 게 상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주위를 한번 쓱 살피고는 신호에 관계없이 급히 뛰어서 길을 건너 버린다.

차를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 신중한 영희는 파란 불(횡단보도는 빨간 불)이라도 금방 횡단보도를 지나치지 않고 한참 주변을 살피겠지만, 성격이 급한 철수는 마냥 신호를 기다리는 것은 시간낭비라고 생각하고 사람만 보이지 않으면 그냥 지나가 버린다.

종합해보면 밤 중에는 신호등의 이익은 줄어들고 비용만 커진다. 이렇듯 당연히 지켜야 할 것 같은 규정이나 법이라도 언제 어디서나 효율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은 아니다. 법은 개인의 자유를 제약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바로 법의 비용이기 때문에 법이 가져오는 이익이 비용보다 더 큰지 항상 고민해 보야야 한다. 이렇게 사회의 법, 규정 등을 경제적 효율성의 측면에서 해석하는 분야를 '법경제학'이라고 한다.

정상만(대구은행 성서공단영업부 부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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