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조 50년대 회상, 채색 목판화의 선구적인 작업
일제의 수탈과 억압을 겨우 견뎌냈지만 6·25전쟁은 이미 피폐해진 그 삶마저 가공할 참상 속에서 송두리째 잃어버리게 했다. 더구나 당시의 비극으로만 머물지 않고 유형무형으로 이후의 삶을 끈질기게 지배하며 괴롭혀왔는데, 아직도 우리는 그 전쟁이 낳은 각종 모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달성 옥포가 고향인 김우조는 실향민은 아니었지만 직접 체험한 상황을 오랫동안 기억하고 거듭 작품으로 남겼다. 1966년에 이어 1968년에 또 하나의 '50년대 회상'을 이번에는 대형 목판화로 제작했다.
다독여 감싼 의복들이며 웅크리고 앉은 사람들의 자태에서 추위와 배고픔에 대한 느낌이 전해진다. 각자의 봇짐과 눈길들은 무엇인가를 기다리는 모습이다. 개개의 형상들은 반드시 동일한 시간과 장소에서 일어난 상황을 나타낸다고만 볼 수는 없으나 강가에서 나룻배를 기다리는 한 무리의 사람들에서 착안하지 않았나 싶다. 화면을 인물들로 가득 채워 배경에는 특별한 묘사가 없으나 그림 오른쪽 상부에 폐허의 잔해가 보여 전쟁 후의 황폐함을 전한다.
아마도 작가는 이 군상을 통해서 전란의 와중에 살던 곳을 떠나 쫓겨 다니던 이들이거나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동정을 표현하려 했는지 모른다. 자기 땅에서 뿌리 뽑힌 채 안착하지 못하고 떠도는 삶만큼 처연한 슬픔도 없다. 분단과 가난으로 수많은 이산가족들을 발생시켰고 그 비애의 단면이 한 방송국의 프로그램에서 실제로 재현되기도 했지만 화가는 먼저 이렇게 도상으로 남겼다.
함축적인 내용의 이 작품은 시각적으로도 몇 가지 특기할 만한 점이 있다. 자연스럽게 1980년대에 많이 제작된 민중 목판화들이 떠올려지는데, 오윤과 이철수 등으로 대표되던 지난 목판화 세대의 선구적인 작업으로 꼽고도 남을 만하다. 대구지역에서도 정하수나 박용진, 정비파 등이 목판화 작업을 활발히 벌였지만 이런 감각적인 양식의 선례를 충분히 알지는 못했다. 노신에 의한 중국 근대 목판화 운동과 독일의 케테 콜비츠의 판화를 참조하던 당시의 젊은 작가들에게 김우조의 이런 판화 세계의 진가는 제대로 소개되지 않았던 것이다.
굵고 각진 명확한 선과 흑백 단색의 명암대비가 목판 이미지를 확고하고 명쾌하게 각인시키는데, 그 위에 선명한 채색을 얹어 결코 암울하거나 어두운 분위기를 조장하지 않는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이겨낸 뒤의 회상이기 때문이리라. 간혹 뒤돌아보는 과거는 현실의 생생한 고통은 소거된 채 투명한 빛 속에서 아련한 영상으로 비치게 된다. 흘러가버린 시간과 또한 살뜰한 사람들에 대한 애틋함의 정이 그리움으로 변해 고통 대신 그 자리에 들어선 것 같은 이 작품에서처럼 과거는 적대나 증오보다 동정을 느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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