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홍철칼럼-지방도 잘 살 수 있다(15)] 영남권 먹여살리는 산업도시의 미래

중국 사회과학원이 2008년 분석한 세계 500대 도시 경쟁력지수에 의하면, 인구 111만 명의 산업도시 울산이 162위로, 인구 357만 명의 부산(242위)과 250만 명의 대구(287위)를 크게 앞지르고 있다. 서울이 9위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 것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지방도시와 차이가 너무 난다는 생각이 들어 착잡한 심정이다.

영남권에는 울산을 비롯해서 창원'포항'구미'거제와 같은 산업도시들이 활발한 생산 활동을 하면서, 우리나라 수출액의 37.9%(2008년)를 차지하고 있다.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울산에 소재한 대기업들은 금융위기 속에서도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룩하면서 한국경제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위기를 벗어나는데 첨병의 역할을 하였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 등 조선업을 기반으로 한 거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주민 1인당 소득 3만달러가 넘는 도시가 되었다.

창원은 기계공업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데, 대기업과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는 중견'중소기업들이 조화를 이루고 있어 외부의 경제적 충격에 훨씬 탄력적이다. 철강 단일산업도시인 포항은 유능한 포스코의 경영진 덕분에 위기를 잘 넘기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일궈놓은 전자도시 구미도 근년에 수출비중이 줄어들고 있으나, IT기반을 활용하여 산업구조 전환을 도모하고 있다.

영남권에는 이들 산업도시 외에도 부산의 녹산공단, 대구의 성서공단 그리고 김해'진주'경산'영천'경주 등지의 공단에서 수많은 중소 부품소재업체들이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생산하고 있다. 이들 중소규모의 공단에는 장인정신에 투철한 기업주들과 숙련된 현장기술 인력들이 모여 있어 대기업들이 요구하는 부품이라면 뭐든지 만들어내고 있다. 영남권의 이들 대기업과 중소기업들은 일심동체가 된 것이다.

영남권을 먹여 살리고 있는 산업도시들은 21세기에 들어와 두 가지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하나는 중국'인도 등 후발개도국으로부터 오고 있다. 인도의 미탈(Mittal)그룹이 M&A를 통해 세계최대 철강회사로 부상하면서 포스코를 위협하는 등 인도와 중국의 견제가 심상찮다. 그동안 부동의 세계 1위를 달리던 조선분야의 총수주량도 2009년에는 중국이 45%로 한국(32%)을 앞질렀다. 자동차 분야도 환경규제의 강화와 전기자동차 시대의 개막 등 기술변화가 급속하게 진행되면서 언제 어떤 복병이 나타날지 모르는 상황이다. 한때 우리나라 전자산업의 메카였던 구미에서는 저가제품들은 중국과 베트남으로 옮겨가고, 핵심 R&D를 필요로 하는 품목의 생산시설은 수도권으로 이전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21세기 지식기반경제시대에 접어들면서 신성장동력산업에 대한 패러다임이 바뀌는 것도 영남권 산업도시들의 미래를 어둡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새로운 성장동력산업으로 주목하고 있는 분야는 바이오'의약'그린에너지 등이다. 이들 신산업들은 R&D 기반이 튼튼하고 우수한 고급인력을 용이하게 확보할 수 있는 수도권이나 충청권에 입지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기업들이 전통산업에서 신산업으로 투자의 무게를 옮겨갈 때, 지방 산업도시들의 상대적 위축과 쇠퇴는 피할 수 없는 운명처럼 보인다.

공동운명체가 된 영남권 산업도시의 대기업들과 나머지 도시들의 중소부품소재기업들은 세계시장의 치열한 경쟁을 헤치고 나아가야 한다. 대기업들이 세계 최고수준의 부품소재들을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받을 때만이, 이들이 생산하는 자동차'조선'철강'기계'IT제품들이 지속적으로 경쟁력을 유지할 수가 있다. 그런데 투철한 장인정신의 중소기업 1세대들이 곱게 자란 2세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주고 있고, 숙련된 기능인력도 은퇴시기를 맞이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이들이 떠나고 나면 누가 제품의 품질을 보장할 수 있을 것인가? 잘못된 부품에서 발생한 문제점 때문에 일본 도요타가 세계 자동차시장에서 치욕을 당한 사례를 우리는 목격하였다.

지금 부산이나 대구를 중심으로 한 영남권 도시들은 신산업 유치를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적어도 향후 10년간은 기존의 대기업들과 중소기업들 간의 공생(共生)관계가 영남권을 먹여 살릴 수밖에 없다. 중앙정부나 지자체들은 지방 중소 부품소재기업들이 꼭 필요로 하는 현장중심의 R&D를 적극 지원하여, 대기업도 영남권도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대구경북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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