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무용가 다카노 나오미(51) 씨가 대구시립무용단(예술감독 박현옥)이 주최한 '무용가와의 대화'를 위해 대구를 방문했다. 다카노씨는 일본 현대무용의 2세대에 해당하며 1.5세대인 부모님으로부터 3세 때부터 무용을 배웠다. 1962년 부모님이 창단했으며 현재 어머니 도시코 씨가 단장으로 있는 '동경창작무용단'의 트레이너 겸 솔리스트로 활동 중이다.
19일 다카노 씨가 대구시립무용단원들에게 보여준 춤은 '벼랑 끝'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다. 9분 7초짜리의 이 춤은 한 발을 잘못 디디면 죽음의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 있고, 또 한 발을 잘 디디면 삶의 자리로 이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이번에 그녀가 들고온 춤은 '가장자리에 선 사람의 삶'에 관한 철학적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카노씨는 "춤은 나를 표현하기 위한 것이다. 테크닉은 수단에 불과하다. 테크닉을 익힌다는 것은 효과적으로 나를 표현하는 능력을 키운다는 것이지 테크닉 그 자체가 목적일 수는 없다"고 말했다. 하나하나의 춤동작은 주제를 드러내는 장치이자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런 경향 때문인지 일본의 춤은 대체로 섬세하고 작은 동작에 중점을 두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미 15차례 한국을 방문했던 그녀는 한국의 현대 무용에 대해 "무용수들의 자국 무용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게 느껴진다. 표현이 매우 극적이며 직설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경향이 강한 것 같다. 섬세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테크닉을 곁들이면 훌륭한 작품이 될 것 같다"고 평가했다.
대구시립무용단의 춤에 대해서는 "테크닉이 뛰어나고 스케일이 크다. 젊은 무용수들이어서 힘이 넘친다"고 소감을 표현했다. 그러나 "대구시립무용단의 춤에서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것은 없고 대구시립무용단이 자신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미국이나 유럽 춤에서도 자신이 배워야 할 것은 없으며 가르쳐 주고 싶은 것 역시 없다고 했다. 그녀는 춤은 자신을 드러내는 과정인 만큼 어떤 경향이나 주제를 배워서 되새김질하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였다.
다카노 씨는 "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각각의 동작을 통해 인간 자체를 연구하고 드러내는 것"이라며 "동작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이른바 '작가주의' 무용가로 대중의 이해보다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사람이다.
"일본에는 크게 두 부류의 무용가가 있다. 나처럼 자신을 표현하는 데 중점을 두는 사람들이 있고 유럽이나 미국에서 유학한 뒤 해외 무용 경향을 받아들이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있다."
다카노 씨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일본에서도 무용은 다른 장르에 비해 대중적 관심이 적은 편이라고 했다. 무용과를 따로 둔 대학은 없고, '무대 예술과'라는 명칭 아래 현대무용, 발레, 전통무용, 무대 메커니즘 등을 동시에 가르치는 대학이 몇 개 있는 정도라는 것이다.
"일본의 무용인들은 학원이나 연구소에서 춤을 배운다. 그리고 자신의 무용단을 만들거나 연구소를 설립해 활동한다. 무용단마다 상임 단원 숫자는 적고, 공연 계획이 서면 전국에서 활동 중인 무용수들이 모여 함께 연습하고 공연한다."
한국에서도 인기를 끌었던 일본 영화 '셀 위 댄스'는 무용이 아니라 사교춤에 해당한다. 일본인들의 춤에 대한 관심은 매우 높은 편인데, 전철역마다 '사교댄스 교습소'가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전통 무용인 가부키나 현대무용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은 낮은 편이다.
다카노씨는 대구에 시립무용단이 있다는 사실을 높이 평가했으며, 지방정부 차원의 지원이 무용을 발전시키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경우 단체에 대한 지원보다는 개인에 대한 지원(해외 유학비 지원, 문화재 지정으로 보조금 지급)이 주를 이룬다고 했다.
한편 대구시립무용단은 '무용가와의 대화'를 주제로 앞으로도 국내외에서 활동 중인 무용가를 초청, 무용가와 시립무용단원들과의 예술적 교류를 이어나갈 예정이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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