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아버지의 원칙

김계희
김계희

열두 살 무렵부터 이십 오리 길을 자전거로 통학을 했다. 여간 폭우가 치는 날이 아니면 비가 와도 한손에 우산을 들고 자전거를 탔다. 칼바람 부는 날도 눈이 내리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는 내 등교시간에 일꾼들을 태우러 자동차를 타고 나가셨는데 그 길에 나를 태우고 가면 될 것을 내가 학교에 도착할 무렵이면 쌩하고 내 옆을 지나가는 거였다. 그럴 때는 아버지가 참으로 원망스러워 아버지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여름 오후 이글이글 타는 도로의 복사열이나 살갗을 에는 겨울 칼바람을 맞으며 그 긴 오르막을 기어도 없이 오르는 일은 끔직했다. 어느 날 방죽 아래로 미끄러져 손목을 접질fj을 때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한동안은 아버지의 차로 등교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손목에 파스를 발라주시면서 "한손으로 탈 수 있지?" 하셨다. 결국 나는 아주 큰 병에 걸리기를 바라게 되었고 거짓말처럼 바람이 이루어져 걷기조차 힘들 정도로 큰 병을 앓게 되었다. 무언가 복수하는 기분에 통쾌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는 어느 날 보약을 사들고 오셔서 "이걸 먹으면 피곤함이 덜할 거다."고 하시며 운동을 하지 않아 몸이 약해진 때문이라고, 공부를 하려면 체력이 되어야 한다며 차를 태워주지 않는 건 여전했다. 이런 비싼 약 대신 차를 태워주면 간단할 것을, 아버지가 이해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이후 아버지의 차를 넘보는 일은 단념하게 되었다.

대학에 들어갈 때 아버지는 등록금 외엔 일체의 경제적 지원을 끊으셨는데 그 후 어려운 일이 닥칠 때에도 아버지는 도움을 주시지 않았다. 늘 막연히 아버지에게 기대심을 품고 있던 나는 십년 전 큰 위기를 겪으며 아버지의 원칙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열다섯에 전쟁으로 부모님을 잃은 후 일찍이 사업을 일구어 동생 셋과 자식들을 다 대학에 보냈다. 풍족한 환경에서 동생들을 뒷바라지 하던 시절, 그 중 전적인 도움을 주었던 사람은 자립심이 없어진다는 것을 실감하였고 결국 부모의 역할이란 평생 그를 업고 가는 것이 아니라 위기에 부딪혔을 때 극복할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다고 한다.

내가 몸져 눕던 때 만일 아버지가 원칙을 바꾸셨더라면, 그리고 위급한 상황이 올 때 마다 아버지가 도와주었더라면 나는 기대심리로 인해 무의식중에 자신을 끝없이 약하게 만들어 갔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버지는 원칙을 고수하셨고 그 위기를 통해 난 내 안에 잠재했을 힘을 끌어낼 수 있었다. 사랑하는 자식에게 원칙을 내세워야 하는 그 마음은 얼마나 저리고 안타까웠을 것이며, 그런 아버지가 자식은 원망스러웠을 것이나, 그 원칙은 오랜 세월 후에야 결실을 맺었다.

김계희<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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