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리리리 띠리리리….'
전화를 받아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이 커져가는 만큼 전화벨은 점점 요란하게 울려 퍼진다.
"지성아! 니 이번에 남극 꼭 가야한데이."
"미쳤어요, 거기 내가 왜 또 가."
"그건 아는데, 하여튼 니가 가야한데이. 니 안가면 나 회사 짤린다."
부산 MBC의 최병한 형님이 계속해서 부탁한다. 아니 이건 그냥 고문이다.
사하라 사막 레이스를 마치고 2주 만에 떠나는 장거리 여정. 남들은 못 가서 안달인 남극을 그때는 정말로 가기 싫었다. 내 몸이 무슨 용가리 통뼈도 아니고 반나절만 자고 일어나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팔팔한 10대도 아닌데 사하라 달리고 바로 남극 넘어가서 그것도 시각장애인 도우미를 한다는 게 쉬운 일인가? 더욱이 무릎까지 빠지는 눈 위에서 남의 눈이 되어 준다는 게 말같이 쉬운 일은 아니다.
◆출발부터 사고는 터지고
계획에도 없이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나의 두 번째 남극 레이스(남극 레이스는 2008년 11월 24일부터 12월 4일까지 펼쳐졌다). 대회는 코스 설정 관계로 11일 여정의 남극 여객선을 이용한다. 그런데 출발 전 우리가 승선한 이름도 긴 러시아 국적의 'Professor Molchanov and Professor Multanovskiy'호가 외부 철판에 작은 구멍이 발견돼 수리를 하느라 모두의 애간장을 태우는 사고가 발생했다. 극지에서의 작은 실수나 사고는 순식간에 모두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형 참사로 변한다.
극지를 가다 보면 여러 가지 사건사고가 많은데, 이전 2007년 대회 참가 때도 두 개의 커다란 사고가 있었다. 하나는 대회 장비를 넣은 나의 짐을 분실했고, 또 하나는 킹조지섬 인근에서 우리 배와 거의 같은 크기의 여객선이 빙산과 충돌해 침몰했다. 우리 배도 구조신호를 받고 구조하러 간 적이 있다. 2007년에 이어서 2008년 대회에서도 또다시 처음부터 사고다. 이게 좋은 징조인지 나쁜 징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이곳에서는 다반사로 생기는 일들이다 보니 그냥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최선인 것 같았다.
하루와 반나절이 지나고 오후로 넘어가는 시점에 한동안 바다속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작업자가 배위로 올라왔다. 그리고 엄지 손가락을 들어 올린다. "올레(Olleh~) 올레올레올레~" 월드컵에서 결승골이 터진 듯 갑판이 난리가 났다.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함께 기쁨을 나눈다. 결국 외부 철판은 용접을 하고 내부는 콘크리트로 보강을 하는 대수선을 마친 후 감독관의 출항 승인을 받고 모두의 환호성 속에 일정보다 하루 늦게 우리는 남극으로 떠날 수 있었다.
◆구르고 또 넘어지고
11월 25일 오후 8시경 우수아이아를 떠난 우리의 여객선은 남미 대륙의 끝인 비글 해협을 벗어나,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 미쳐서 날뛰는 드레이크(Drake) 해협을 통과해 3일만에 남극에 도착했다. 남극에 오는 도중 처음으로 고래도 만나고 드레이크 해협도 조용해서 편안한 여행이 되었다. 사람들은 흔히 한국의 세종기지가 있는 킹조지섬이 남극의 전부인 걸로 알고 있다. 하지만 막상 남극권에 들어가면서 킹조지섬은 번외 동네로 취급한다는 걸 알았다. 남극권에는 여러 나라 기지들이 있기에 생활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그들은 한결같이 킹조지섬은 그냥 남극의 입구라고 말한다.
11월 28일 오전 우리는 남극의 관문인 킹조지섬을 통과한 지 하루 만에 남극 대륙의 끝 부분에 상륙했다. 올해 나의 배 번호는 작년과 같이 맨 마지막 번호다. 작년에는 14번, 올해는 27번. 행운의 숫자 7번이 있다는 게 왠지 기분이 좋다.
대회의 첫 번째 마당은 쿠버빌에서 펼쳐졌다. 쿠버빌은 작년에 달리다가 '어떻게 빠졌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작은 크레바스(빙하의 갈라진 틈)에 빠져 놀라기는 했지만, 정상에서 바라보는 주변의 경치가 환상적인 곳이다.
함께 간 시각 장애인 송경태 님은 20대 초에 군대에서 수류탄 사고로 시각을 잃었지만 지금은 시각장애인 도서관장과 전주시의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단한 사람이다. 송경태 님과는 그동안 사하라, 고비사막에서 도우미로 같이 달린 적이 있지만 눈 속을 뛰는 건 서로 처음이다.
막상 코스에 들어가니 눈이 허벅지까지 와서 사막처럼 옆으로 서서 함께 달릴 수가 없었다. 몇 번 시도했지만 너무 힘들었다.
"유 팀장, 잘 갈 수 있을까?"(사막에서 한국 사람들은 나를 유 대장 또는 유 팀장으로 부른다)
"잠깐만요, 잠깐, 잠깐 움직이지 말고, 어어어…."
구르고 또 구르고, 넘어지고 또 넘어지고. 다른 사람에게는 쉬운 길도 우리에게는 상당한 난이도로 다가온다. 코스가 어려우면 사실 시각장애인보다 도우미가 더 힘들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다친데 없으세요?"
"어쩔까? 바닥이 미끄러우니까 도저히 중심을 못 잡겠는데. 어떻게 가야 하나? 코스가 많이 험한가?"
"평지도 있고 내리막도 있고 언덕도 있는데 문제는 길이 좁아서 앞뒤로 가야 하거든요. 그리고 여기 눈은 아래쪽이 얼음이라 미끄러워서 중심 잡기가 힘들어요."
"그럼 어쩐다요?"
"최대한 속도를 줄여서 중심을 잘 잡고 가는 수밖에 없어요. 한 손은 배낭을 잡으시고, 한손은 제 손을 잡으세요."
할 수 없이 다른 선수들이 달리며 만들어 놓은 좁은 길을 따라서 달리지만 조금이라도 균형이 깨지면 여지없이 넘어지고 구르기 일쑤다. 눈 속은 군데군데 얼음 지역이 있기에 한번 들어간 발이 잘 안 나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경쟁자는 우리 자신
나는 눈뜬 소경이었다. 내 눈에는 오로지 눈 앞 5m밖에 보이지 않았다. 평상시 같으면 대화도 하면서 여유를 즐기겠지만 현장에서는 고개 처박고, 깊이 빠지는 눈길을 발로 다지며 안전한 길을 찾아서 잘 갈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체력 소모도 상대적으로 심해서 한 구간을 마치고 배로 돌아오면 우리는 거의 기절을 했다. 거짓말 안 하고 나는 정말 탈진해서 쓰러져 한동안은 아무 것도 못하고 앓아 누웠다. 사막에서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추운 남극에서 눈 속을 도우미로 뛰어야 한다는 건, 몸 안의 모든 에너지를 전부 불태우고 또 태워야 하는 일이었다.
첫 번째 쿠버빌 구간, 두 번째 네코하버까지는 어떻게 하면 눈길에서 덜 넘어지고 잘 달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연구하느라 레이스에 대한 기억이 잘 안 난다. 그러나 하도 넘어지다 보니 조금씩 환경에 적응이 됐다. 넘어지는 데도 요령이 생겨서 어떠한 각도로 넘어져도 부상을 안 당했다. 그냥 넘어지는 게 자연스런 일상으로 변해 있었다.
당사자가 아니면 절대 모른다. 오지레이스에서 도우미를 해 보지 않고서는 그 사람의 심정과 어려움을 절대로 알 수가 없다. 그렇기에 상대방에 대해서 이렇다 저렇다 함부로 이야기하는 일은 조심해야 한다. 나는 우리에게 가장 최적화된 레이스 운영 방법을 찾아서 현장에 적용했다. 우리의 경쟁자는 남이 아닌 우리 자신이었다. 우리의 위치는 꼴등이다. 최악의 코스 상황에서 한두 명 이긴다고 특별히 달라질 게 없었다. 더욱이 나는 두 번째 참가이며 도우미다. 도우미의 목적은 상대방을 안전하게 완주시키는데 있다. 그래서 철저하게 꼴등에 목표를 두고 안전한 레이스를 펼치기로 했다.
#유지성은
세계 각지의 오지 레이스에 도전하는 실전 여행가. 대기업에서 건축가로 일하다 사막을 여행하겠다는 꿈을 좇아 회사를 그만두고 사막 레이스에 도전했다. 2002년부터 사하라'고비'아타카마'나미브 사막과 남극, 북극 등 15번의 오지 레이스에 도전해 모두 완주했다. 세계 4대 극'오지 레이스 코스를 정복해 한국인 최초로 사막 레이스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기도 했으며, 세계 최초로 두 번째 그랜드슬램을 앞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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