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 앓는 추승주 군

5살짜리가 항암치료 조차 못받고 약물로만…

세살때부터
세살때부터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암에 걸린 승주는 2년째 투병생활을 하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9일 서울 삼성병원에서 만난 승주(가명·5·대구시 중구 달성동)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 승주 아빠 추석민(가명·32) 씨는 "아이가 두 살 때부터 병원 생활을 해 사람을 대하는 법을 잘 모른다"고 말했다.

승주는 '혈구탐식성 림프조직구증'이라는 암에 걸린 꼬마 환자다. 10만 명 중에 한 명이 걸릴까 말까하는 희귀병. 5살밖에 안 된 승주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짐이다. 세상과 격리된 채 병원에서만 지내는 아들을 보는 아빠도 마음이 너무 쓰라리다.

◆"왜 하필 내 아들이…."

승주는 안경을 쓴다. 병으로 약해진 아이의 몸은 면역력이 없어 작은 바이러스의 공격도 버텨내지 못한다. 시력이 약해진 것도 이 때문.

승주 아빠는 여태껏 승주와 같은 병에 걸린 환자를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아빠는 "왜 하필 내 아들이 이 병에 걸렸는지 모르겠다"고 눈물을 삼켰다.

승주가 아프기 시작한 것은 2008년 9월쯤. 어느 날 밤, 승주의 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40℃를 웃도는 열은 해열제를 놓아도 내리지 않았다. 대구의 한 종합병원에 갔더니 "원인을 알 수 없다. 큰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해봐야 안다"는 말만 되풀이 했다. 엄마 박민지(가명·36) 씨는 곧장 서울 삼성병원으로 향했다. 아이가 제발 큰 병에 걸리지 않길 바랐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당시 22개월밖에 안 된 아들의 힘겨운 투병생활은 그렇게 시작됐다.

그래도 희망은 있었다. 아들의 제대혈을 남겨둔 덕분이다. 제대혈을 이식하면 아이가 건강해질 수 있다는 실낱같은 희망이 있었다. 단 병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었다. 그래서 지난해 10월 10일, 승주는 제대혈 이식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이 희망마저 무너졌다. 이식을 받은 지 6개월도 안 돼 아이는 다시 아프기 시작했다. 병이 재발한 것이다.

승주 아빠는 "차라리 이식을 하지 말 것을…"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항암치료도 할 수 없는 아들은 앞으로 약물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버텨가야 한다. 주사를 맞을 때마다 눈물을 흘리며 구토를 하는 아들, 그 아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것 외엔 해줄 것이 없는 아버지의 가슴은 미어진다.

◆양보를 가르칠 수 없는 엄마

승주는 인터뷰 내내 공룡이 그려진 그림책을 꼭 안고 있었다. 승주 엄마는 "지난해에 공룡 사진을 보여준 이후 공룡에 푹 빠져버렸다"고 말했다. 승주는 아직 한글을 배우지 못했다. 그냥 그림만 볼 뿐이다. 승주 또래 아이들은 어린이집에 다니면서 한글을 익히고 영어까지 배우지만 승주에겐 그럴 여유가 없다. 치료에 모든 시간과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아이는 그림책을 보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승주는 줄곧 혼자 자랐다. 형도 누나도, 동생도 없다. 병원에서도 친구를 사귈 형편이 못 된다. 병원측에서 다른 환자들에게 바이러스를 옮길 우려가 있으니 1인실을 써야 한다고 요구해서다. 공룡 그림책은 그래서 승주의 유일한 친구다. 승주 엄마는 "승주는 양보하는 법을 모른다"고 말했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지내본 적이 없어 양보를 왜 해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한다"며 "그런 아들을 볼 때 엄마로서 제대로 가르쳐주지 못한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렇다고 엄마는 아픈 아들에게 '남을 먼저 위하라'고 가르칠 수도 없다. 엄마에게는 아픈 아들이 항상 먼저니 말이다.

승주의 심장에는 관이 하나 연결돼 있다. 휠체어 옆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링거액이 관을 타고 심장으로 흘러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아이의 팔목에 링거 주사바늘을 자주 꽂았다 뽑았다 하면 금세 퍼렇게 멍이 들어버리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가슴에 구멍을 뚫는 방법을 택했다. 두 시간 전신마취를 해서 승주의 심장에 구멍을 냈다. 아이는 이게 뭔지 몰라 잡아 뜯는다. 자신의 가슴에 왜 구멍이 났는지 이유조차 모르는 나이다.

◆불어난 빚보다 승주가 먼저

대구에서 태어난 승주는 현재 서울에서 지낸다. 대구에서 치료받을 병원이 없어 엄마와 아빠는 짐을 싸서 서울로 올라왔다. 경기도 성남에 있는 사글셋방을 구해 아이가 입원하지 않는 날에는 그곳에서 지낸다.

이전에 작은 레스토랑을 운영했던 석민 씨는 그럭저럭 돈을 벌었다. 하지만 고난은 한꺼번에 찾아왔다. 사업이 무너질 무렵 아이도 병에 걸렸다. 게다가 부인 민지 씨까지 병을 앓고 있다. 뇌하수체 질환을 앓고 있지만 자기 몸을 돌볼 여력이 전혀 없다.

승주가 아프면서부터 석민 씨 부부는 주위 사람들에게 빚을 지기 시작했다. 입원비와 수술비를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고 석민 씨 부모님께 도움도 받았다. 석민 씨 아버지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뒤에야 5천만원이 넘게 드는 제대혈 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

지금껏 승주 치료비로 든 돈은 2억원이 훌쩍 넘는다. 입원비에 가장 많은 돈이 든다. 1인실을 써야 하는 승주는 하루에 50만원이나 되는 입원비를 감당해야 한다. 이런저런 검사도 한번 받는데 적어도 20만원이 든다. 아빠가 장갑 배달하는 일을 하며 벌 수 있는 돈은 고작해야 한 달에 150만원이 전부다. 지난달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보조금 40만원이 나오지만 이걸로 승주 입원비를 감당하기도 벅차다. 급한 마음에 카드로 치료비를 결제했던 석민 씨 부부는 '신용불량자' 낙인까지 찍힌 상태다.

백혈병, 뇌종양에 걸린 아이들은 '소아암의료비 지원제도'를 통해 3천만원 정도 지원금을 받을 수 있지만 승주는 해당이 안 된다. 보건복지부도 승주가 걸린 병은 진단 분류 코드가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을 할 수 없다고 통보했다. 석민 씨는 "어떻게 생명에다 등급을 매길 수 있냐"며 억울해 했다. 그는 또 "빚이야 얼마가 되든지 내가 열심히 일해서 갚으면 되지만 돈 때문에 우리 승주가 치료를 못 받을까봐 걱정이 된다"며 고개를 떨궜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매일신문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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