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문화정책에서 대구문화재단의 역할은 크다. 대구시의 문화정책 파트너로 기대를 모으며 설립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구문화재단이 출범 1년을 맞은 지금, 내실 있게 운영되지 못하면서 발전 전망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대구시의 '상전' 의식…거창한 밑그림 그려놓고 지원 미흡
시가 재단 출범 당시 만든 '대구문화재단 설립 운영계획'에 따르면 재단에 대해 '민간의 전문적 역량에 바탕을 둔 정책 기획과 고품격 문화창조도시 대구를 구현하기 위한 일을 하는 기구'라고 명시돼 있다. 이를 위해 시와 재단의 문화정책 업무를 이원화했다. '하드웨어' 격인 문화정책 수립은 시가 담당하고, 재단은 '소프트웨어' 격인 문화예술진흥·지원 시스템 개발, 문화예술행사와 문화시설 위탁 운영, 문화예술진흥기금 운영 및 확충 등을 담당토록 했다.
설립 1년이 지난 지금 정책 이원화 여부는? 결과부터 말하면 '아니오'이다. 시가 재단에 넘겨준 소프트웨어의 경우 재단 설립 전에 시가 수년간 해오던 문화예술진흥 및 지원사업이 사실상 전부다. 재단 내부에선 "그냥 지원사업만 이관할 거면 뭣 때문에 문화재단을 만들었느냐"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문화예술회관, 오페라하우스, 시민회관 등의 문화시설 위탁 운영은 계획으로만 끝나 버렸다. 문화예술회관과 오페라하우스는 공무원 조직이어서 재단이 위탁·운영하기는 부적절한 것으로 결론났고 시민회관도 독자 운영으로 굳어졌다. 이와 관련, 경기문화재단의 경우 사무처 이외에 주요 연구원과 박물관, 미술관 등을 위탁 운영하며 그 전문성을 키우고 있다.
문화예술행사 위탁 운영도 개점 휴업상태. 그나마 시가 올해부터 넘겨준 대구컬러풀페스티벌도 별도 기획단에서 기획과 축제 운영 등을 총괄하고 있고 재단은 '돈 내주고, 내준 돈이 제대로 쓰였는지'를 확인만 하고 있다.
또 '재단 운영계획'에선 별도의 조직위원회가 있는 대구국제뮤지컬페스티벌과 대구국제오페라축제의 경우 재단이라는 '틀 안'에서 이들 국제축제를 발전시키는 것이 옳다고 했지만 이들 축제는 시의 예산 지원과 정책 배려 하에 독자적으로 행사를 꾸려나가고 있다.
재단의 자체 사업인 도시문화브랜드 사업에서도 시의 미흡한 재단 지원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3억원의 예산을 확보했다. 시는 3억원의 매칭 예산을 재단에 줘야 하지만 아직 주지 못하고 있다. 당초 시는 3억원의 예산을 책정했으나 시의회가 삭감하자 재단에 추경 예산을 마련해 지원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 추경에선 '돈이 없다'는 이유로 편성조차 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지역 문화계 일각에서는 대구시가 대구문화재단에 대해 종 부리듯 하는 '상전' 의식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고 개탄하고 있다. 시와 재단 간 회의 분위기도 일방 전달식이어서 재단 직원들이 모멸감을 느낀 적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화계는 역할 분담 역시 일부에 그칠 뿐 더 이상의 '권한'을 내주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대해 대구시는 '시=하드웨어, 재단=소프트웨어'의 이원화 분담 원칙은 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향후 재단 운영 상황과 시 문화정책의 방향성과 관련해 재단의 소프트웨어 일부를 수정할 수는 있다는 의견이다. 김대권 대구시 문화예술과장은 "2011년인 내년까지가 문화재단 기반 구축기라 할 수 있으며 2012년부터 일부 역할을 더 넘겨 재단 발전이 본격적으로 이뤄질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했다.
◆보폭 좁은 대구문화재단
그러면 재단은 그동안 역할을 제대로 했을까? 재단 설립 당시 대구시는 문화관광부 차관까지 지낸 김순규 대표를 모셔오다시피 했다. 김 대표는 주로 문화부에서 30년 이상 근무한데다 차관까지 승진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정책 수립과 시행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어서다. 그래서 시는 김 대표 영입 당시 상당한 기대를 했다.
재단 대표 취임 1년이 지난 지금 김 대표의 성적표에 대해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고 있다는 우려가 대구시에서 나오고 있다. 시는 취약한 지방 재정 여건상 자체 문화예술 예산 확보가 어려워 중앙정부의 예산 지원이 절실한 상황에서 중앙정부에 인맥이 넓은 김 대표의 '실력 발휘'를 기대했지만 '재단발 희소식'을 별로 듣지 못하고 있다는 반응이다.
적잖은 지역 문화예술계 인사들도 김 대표에 대해 해박한 문화예술 지식과 경험, 그 활동성을 느끼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다. 주요 문화예술행사에서 김 대표를 만나기 힘들었고 만나더라도 대화의 기회도 별로 없었다고 한다. 지역 문화예술계 관계자는 "재단 출범 초기 재단 대표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재단의 향후 성격을 명확히 하고 재단을 본궤도에 올릴 책임과 의무가 있다"고 했다.
문화계 인사들은 김 대표의 좁은 활동 반경이 재단의 문화예술 사업 노력에도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재단이 자체 기획한 사업은 주요 광역단체별로 선정된 문화교육센터사업을 제외한 도시문화브랜드사업이 유일하다. 이 사업도 기획 당시 예산이 확보되지 않아 사업 축소가 불가피한 상황이며 내부에서조차 '문화도시 대구'의 정체성과 동떨어진다는 논란이 일고 있다.
김대권 과장은 "재단이 자체적으로 정책을 기획해 중앙정부로부터 예산을 따와야 하고, 예산을 따면 시가 매칭해 지역에 많은 문화예술사업을 할 수 있다. 또 예산 확보에 따른 수수료 등으로 재단 운영 숨통도 트인다"며 "대구테크노파크가 그러하다"고 밝혔다.
또 재단 직제표에는 이름뿐인 팀이 있다. 바로 문화재연구팀으로 문화재 발굴·조사 업무를 하는 곳이다. 팀을 잘만 운영하면 재단 운영에 상당한 '재정 원군'이 될 수 있다. 이에 대구시는 재단에 문화재연구팀 운영을 요청했었다. 하지만 재단은 대구에 경쟁 기관이 많은데다 일정 이상의 수익을 낼 만한 현장이 없고 인건비 확보도 어렵다는 이유로 팀 구성을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음은 기금 문제다. 재단의 목표 기금은 500억원. 하지만 현재 기금은 설립 당시 185억원 그대로다. 재단은 지금껏 1억1천만원의 기금을 확충했다.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힘이 빠진다. 1억원은 금융기관으로부터 기금예치 보답 성격으로 받았고 이 기금은 문화사업에 쓰고 있어 순수 기금은 1천만원에 불과하다. 재단은 "요즘 어떤 기업과 기관에서 문화재단에 큰 돈을 주냐"고 강변하면서 대구시의 추가 출연을 기대하고 있다.
대구시는 시 예산 여건상 돈이 많은 인천 등 수도권처럼 추가 출연이 어렵다는 입장이어서 결국 재단 기금 조성은 서로에게 확보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다.
◆협력체계 강화 절실
출범 1년을 맞은 대구문화재단에 '알맹이'가 없다는 지적은 결국 대구시가 재단에 역할을 넘겨 준다고 해놓고, 힘을 실어 주겠다고 해놓고 '부도'를 냈기 때문이다. 여기에 시와 문화계 기대에 못 미치는 문화예술사업 노력과 관이 만든, '안주의 틀'에 있는 재단이 엎친 데 덮쳐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지역 문화예술계에 지배적이다.
문무학 대구예총 회장은 "문화는 관 주도에서 관과 민의 전문기관이 함께해야 하는 정책 분야로 급변하고 있다. 시와 문화재단의 협력체계가 절실한 이유다. 시는 현재의 문화정책을 다시 짚어볼 필요가 있고 재단도 책상에서 나와 문화현장과 정책현장으로 24시간 뛰어다니는 자세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구문화재단 김성열 사무처장은 "예산 부족에 따른 사업 차질, 대구시의 무관심 등의 여건으로 인해 재단이 연착륙하는 데 어려웠던 측면도 있다. 최근에는 중앙정부의 사업평가에서 최상위 점수를 받았고, 대표와 직원들이 밤낮으로 뛰고 있는 만큼 조기에 대구의 문화예술대표 기구로 자리 잡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종규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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