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雲門서 華岳까지] (30)동곡능선

청도 제1경, 동창천 공암풍벽 이제는 운문호에 잠겨 자취만…

공암풍벽. 동창천 유역의 뛰어난 경관 중에서도 최고의 승경지로 꼽히던 곳이다. 거기 있던 굴 등 상당부분이 지금은 운문호 물 속에 잠겼다고 했다.
공암풍벽. 동창천 유역의 뛰어난 경관 중에서도 최고의 승경지로 꼽히던 곳이다. 거기 있던 굴 등 상당부분이 지금은 운문호 물 속에 잠겼다고 했다.

바리박산 이후 산줄기는 서쪽을 향해 슬그머니 굽는다. 그러면서 100여m 폭락했다가 조금 솟아 닿는 언덕 같은 593m봉서 둘로 나뉜다. 더 낮게 떨어지면서 거의 직진하듯 서쪽으로 이어가는 게 비슬기맥이다. 반면 좌회전해 남쪽으로 방향을 되돌리면서 높이를 별차 없이 유지해가는 건 '동곡(東谷)능선'이다.

동곡능선은 쉽게 얘기해 운문호 서편을 감싼 산줄기다. 청도~경주 사이 20번 국도를 따라 운문호를 지나고 있다면 동곡능선 자락을 통과하는 중이라고 알면 된다. 전체 길이가 14㎞에 이르며, 처음 4㎞는 600m대, 다음 3㎞는 500m대, 다음 2㎞는 400m대다. 이 시리즈가 '동곡능선'이란 이름표를 붙이는 것은 청도 금천면소재지 동곡리서 이 산줄기가 끝나기 때문이다.

동곡능선의 동편은 동창천 유역이고 서편엔 그 지류의 지류인 '부일천'(扶日川)이 흐른다. 동창천 변엔 봉하·지촌·공암·대천·방지리 등 운문면 마을, 부일천 주변에는 경산 용성면 육동지구 여섯 마을과 청도 금천면 소천리(小川里) 등 7개 마을이 있다.

동곡능선을 타면 분기점(593m봉) 출발 5분 만에 598m봉을 거친 뒤 다시 그만한 시간 뒤 다른 598m봉에 도달한다. 동쪽으로 장륙산이 잘 바라다 보이면서 그것의 지릉 위에 올라앉은 용귀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좋은 전망대다.

하지만 초행자들은 그곳에서 까딱하면 혼란에 빠진다. 도심 공원 같이 꾸며져 있기 때문이다. 품위 있는 정자가 있고, 그 주위에는 대리석 바닥돌이 깔렸으며 잘 생긴 의자들이 죽 나열됐다. 이뿐만도 아니어서 하강로는 멋진 계단으로 장식됐고, 내려선 잘록이엔 널찍한 주차장과 화장실은 물론 족구장까지 완비됐다.

아무도 없는 심심산중에 이게 대체 무슨 일일까? 의문은 뒷날 그 서편 부일리 마을에 가서야 풀 수 있었다. '산촌체험장'을 꾸미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중심부가 돼 있는 그 잘록이는 '화전재'이며, 그 아래 '귀재골' 안을 거쳐 거기까지 임도도 열었다고 했다. 화전(火田) 터여서 저런 이름이 붙었는가 싶은 화전재는 동편 지촌리와 통하는 길목으로, 옛날엔 주막이 있고 우마차길도 뚫려 있었다는 얘기가 들렸다.

화전재를 지나면 산줄기는 다시 솟아 1.7㎞ 길이의 600m대 능선을 이룬다. 그 구간 최고봉 높이는 무려 680m. 바리박산이나 구룡산마저 능가한다. 하지만 현지인들이 더 주목하는 것은 그것과 570m재를 사이에 두고 솟은 667m봉이다. 이걸 '반룡산'이라 부르면서 일대 산세의 상징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 아래 반룡사로부터 이름을 땄을 터이다. 하지만 숲에 막혀 깜깜해지면서 산덩이 자체조차 아주 왜소하게 느껴지는 봉우리다.

동곡능선은 그 10여 분 후 500m대 능선으로 낮아지며, 그 능선을 15분쯤 걸으면 565m 높이의 평탄면에 닿는다. 청도 제일의 풍광으로 꼽혀온 동창천 가 공암리 절벽암괴로 가는 지릉 분기점이다. 그 절벽암괴는 단풍 모습이 특히 멋지다고 해서 오랜 세월 '공암풍벽'(孔岩楓壁)이라 불려 왔다.

자동차를 이용한 풍벽 답사에 가장 좋은 곳은 20번국도 변 전파중계탑이 보이는 지점이다. 동창천 쪽으로 이어져 있는 풍벽 산줄기의 들머리가 거기다. 올라서면 '361m 가리봉'이란 팻말과 산불초소가 있는 첫 봉우리에 바로 닿는다. 도합 30분이면 이탈리아반도처럼 동창천 쪽으로 튀어나간 풍벽 위에 이를 수 있다. 겨우 몇m 너비로 이어나가다 마지막에 올려 세우는 216m봉이 압권이다. 공암마을 어르신은 "운문호만 아니었으면 이 일대가 대단한 명승지가 돼 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그 전에 벌써 케이블카 설치가 추진되는 등 투자 움직임이 활발했다는 것이다.

풍벽지릉 분기점 이후 만나게 되는 중요한 지형은 거기서 얼마 안 가 닿는 520m봉이다. 그 아래 학생야영장으로 이어지는 지릉 분기점이다. 봉우리 위에는 거기가 '왕재'(王峴)라고 알리는 경산시청의 입간판이 서 있다. 옛날 신라왕이 지나 다니던 압독국(경산) 관문이라는 얘기다.

하나 낮은 잘록이를 옆에 두고 뭐 하러 굳이 높은 봉우리를 길목 삼았을까? 많은 수행원들은 저 좁은 봉우리를 어떻게 통과했을까?…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그래도 틀림없이 그랬다면 이름이나마 '왕고개'로 정정해야 옳을 것이다. 재는 봉우리가 아니라 그에 대칭되는 잘록이를 말하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오면 동곡능선의 초반 3분의1을 걸은 셈이다. 이것과 다음의 중반 3분의1 구간 걷기에 소요되는 시간은 각 90여분이다. '한내(大川)고개'를 종착점으로 하는 중반 구간의 산길은 지나온 것보다 더 평이하다. 이 구간서는 한내고개로 바로 내려설 수도 없다. 찻길 만드느라 많이 깎아내면서 절벽이 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 선택되는 중반 구간 날머리는 한내고개 북편에 있는 또 다른 잘록이다. 267m봉을 사이에 두고 한내고개와 똑 같은 245m 높이를 하고 있는 지형이다. 그리로 하산하면 낙석방지용 펜스가 없는 묘역으로 내려서게 된다.

한내고개는 운문호가 생기기 전 그 남쪽에 있던 운문면 대천리 등 큰 마을들을 경산 자인장과 직결시켜 주던 길목이었다. 내다 팔 것을 이고 지고 넘어갔다가 필요한 것을 사서 되돌아오곤 했을 것이다.

그 고개서 종반 3분의1 구간으로는 미약하나마 길이 이어진다. 터널 같은 숲 더미 속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서면 얼마 안 가 운문호가 보이기 시작하며, 15분 이내에 첫 봉우리인 373m봉에 도달된다. 이 산줄기 유일의 헬기장과 상수원구역 경계 푯말이 있는 거기는 운문호 전체를 내려다보는 좋은 전망대다. 대천리·방지리도 훤하다.

이 봉우리서 남동쪽으로 빠져나간 편도 4분 거리의 가지산줄기에 365m봉이 있다. 정상 푯말이 알리는 대로 그 아래 대천마을서 '종지봉'이라 부르는 봉우리다. 운문호 둑(댐)은 이 종지봉과 건너편 호산(314m) 사이 협곡을 막은 것이다. 대천 삼거리서 경주 쪽으로 난 20번 국도를 탈 때 맨 먼저 이 산덩이를 감아 돌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종지봉 남쪽 현재의 대천리는 인위적으로 조성된 이주단지다. 이전의 그곳은 금천면 방지리 평범한 산비탈이었다고 했다. 운문면 소재지 마을인 대천리가 물에 잠기자 그 땅을 떼어 운문면으로 넘겨서는 새 대천리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방지리 주민들에게 운문면 전환 의사를 물었고, 상방지·중방지·하방지 세 자연마을 중 동의한 상방지 마을만 금천면서 운문면으로 소속이 바뀌었다. 현재 대천리와 방지리 주택지가 구분 안 될 정도로 인접하게 된 연유가 바로 이것이다.

373m봉으로 되돌아 와 동곡능선 본선을 걷자면 출발 20여 분 후에는 247m재로 떨어진다. 방지리와 산줄기 너머 채석장 일대를 잇는 '배고개'다. 이 재 이름을 동쪽 방지리와 서쪽 사전리 남전마을 어르신 공히 '백꼬개'라 발음했다. '고'에 힘이 들어간 것이다. '배'가 먹는 과일 배(梨)라는 뜻인가 싶었다.

배고개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서 있다. 300여 년 전 어떤 분이 그 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방지리에 전해지고 있었다. 뿌리 주위에 돌 축대가 정성스레 쌓여있는 것도 그런 인연 때문일지 모른다. 하지만 거길 통해 이어져 가야 할 서편 산길은 이제 절벽으로 잘렸다. 그 너머에 들어선 채석장이 까먹었기 때문이다.

배고개서 올라서면 산불초소가 선 332m봉이다. 이걸 국가기본도는 '납닥갓산'이라 적어뒀으나, 실제 '납닥갓'은 그 봉우리 남쪽 기슭 방지리 뒤 나지막하고 납작한 구릉을 가리킬 뿐이라고 했다.

332m봉서 내려서는 280m재에서도 방지리 쪽으로는 길이 잘 나 있었다. 이 재를 서쪽 남전마을에서는 '노루미기'라 했고, 동편 방지리에서는 '아래고개'라 했다. 배고개에 대칭시킨 듯하다.

동곡능선의 끝인 동곡리는 여길 거치고도 한참을 가야하지만, 대부분 구간에서는 산길이 매우 희미하고 전망도 어둡다. 동곡리가 산동의 중심 마을로 매우 크긴 해도 주위에 워낙 좋은 산이 많아서인지 마을에 인접한 이 뒷산은 제대로 돌보지 않는 듯했다.

종반 3분의1을 걷는 데는 초·중반 구간보다 20~30분 더 걸린다. 바닥거리가 4.75km 정도로 좀 더 길 뿐 아니라 마을들이 조밀해 살필 것도 많기 때문이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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