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여름은 정말 지긋지긋하도록 덥다. 단순히 수은주 상의 눈금만으로 따지면 영천이나 포항 강릉도 그에 못지않으나 체감 기온으로는 어느 지역도 대구를 따라올 수 없다. 비도 거의 내리지 않는 데다 솥뚜껑을 뒤집어 놓은 것 같은 반구형(半球形) 지형에 사람들이 밀집해서 살기 때문이다.
1979년이던가, 내가 고등학교 졸업반이던 그해의 폭염은 실로 가공할 정도여서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연일 섭씨 40도를 오르내렸고 아스팔트는 진흙처럼 물렁거렸다. 더욱이 중앙로를 10m 이상 걸어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지경이었는데 사람들 얘기로는 그늘에서 온도를 재어도 50도나 60도쯤 될 것이라고 했다.
사람이 못 살 지경인 대구의 더위를 다른 눈으로 보게 된 것은 뒷날 알베르 카뮈의 산문집 '결혼? 여름'을 읽고부터였다. 소설 '이방인'으로 유명한 카뮈는 자신이 태어난 아프리카 도시인 알제를 일생 동안 자랑스러워했는데 특히 알제의 뜨거운 여름을 깊이 사랑했다. 책 제목에 들어간 '결혼'도 맹렬하게 더운 이 도시를 여인처럼 사랑한다는 뜻이다. 그에게 알제의 작열하는 햇살은 '황금빛 꽃가루'이며 '신기한 기쁨의 빛'이다. 그의 글은 폭염을 비범한 차원에서 성찰해내고 있다. '도시의 한쪽 끝에서는 벌써부터 여름이 우리에게 또 다른 풍요를 권한다. 그것은 바로 침묵과 권태다. 그 침묵들은 그늘에서 생긴 것이냐 햇빛에서 생긴 것이냐에 따라 그 질이 다르다.'(알제의 여름)
흔히 겨울은 자성의 계절이고 문학적인 감성과도 어울린다. 이에 비해 여름은 야만적이라 할 수 있는데 카뮈에게서 여름이 이토록 아름답게 노래가 될 수 있다니 놀랍다. 카뮈가 이 글을 썼을 때는 겨우 23살, 앳된 청년이었다. 나는 의심이 들었다. 더위가 정말 그토록 사랑할 만한 것일까? 폭염은 우리에게 다른 차원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걸까?
나는 점점 나이를 먹으면서 폭염의 독특한 성격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건 오로지 내가 폭염의 도시에 살고 있어서 가능했을 테다. 모름지기 자연은 조화와 균형, 혹은 순환을 본질로 갖는다. 하지만 폭염은, 거대한 태풍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균형을 무너뜨리며 우리를 일상의 바깥으로 내몰아버린다. 폭염은 우리에게 기존의 질서를 흩트리게 한다. 그뿐만 아니라 익숙한 가치나 규범마저도 훌훌 벗게 하면서 우리를 벌거벗은 인간의 원형으로 돌아가게 만든다.
좀 거칠게 말하자면, 인간은 자연의 현상을 경이롭게 바라보면서 자신을 학습해왔고 사실상 우리의 인성(人性)도 거기서 비롯되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폭염을 거절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순간, 폭염은 우리 속으로 들어와 우리의 일부가 된다. 우리의 성격 속에 좀더 강렬한 열정과 야만, 가치의 무위가 스며 있다면 이건 폭염이 준 신비로운 선물일 것이다.
금년 들어 대구는 만만찮은 폭염을 만나게 되었다. 구름 몇 점 없는 하늘에서 태양으로부터 '황금빛 꽃가루'가 쏟아지는 건 꽤 오랜만인 것 같다. 재난대책본부는 연일 폭염주의보를 발령하며 시민들에게 건강에 유의하라고 호들갑을 떤다. 그러나 35도쯤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은주가 좀 더 치솟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때가 아니면 어떻게 대기 속에서 열탕 같은 느낌이 맞을 수 있으랴.
폭염은 확실히 우리를 문명보다 자연에 가깝도록 이끈다. 문명으로부터 생겨나는 온갖 이기심과 질투와 욕망이 이글대는 태양 아래서 무력화한다. 폭염 때문에 일어나는 원시성은 마치 카니발처럼 우리를 전복시키는 것이다. 젊은이는 거의 벌거벗은 채로 거리를 쏘다니고 늙은이는 땀 냄새와 새카맣게 그을은 피부를 마다하지 않는다. 엄청난 뙤약볕은, 이 강렬한 자연의 운동은 기계문명으로 가득 찬 도시의 시민들에게 다른 차원의 숨통을 열어젖히게 한다.
이쯤 되면 대구시에 폭염을 '대구의 카니발'로 연결시키는 멋들어진 작업을 기대하려니와, 작가인 나로서도 카뮈가 알제의 뜨거운 여름을 묘사했듯이 태양의 도시 대구를 한번 실감나게 그려보고 싶어진다.
소설가
댓글 많은 뉴스
이재명 90% 득표율에 "완전히 이재명당 전락" 국힘 맹비난
권영세 "이재명 압도적 득표율, 독재국가 선거 떠올라"
이재명 "TK 2차전지·바이오 육성…신공항·울릉공항 조속 추진"
대법원, 이재명 '선거법 위반' 사건 전원합의체 회부…노태악 회피신청
전광훈 "대선 출마하겠다"…서울 도심 곳곳은 '윤 어게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