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찰로 들어오는 대문을 '불이문'이라고 합니다. 바깥 세상과 사찰 안의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뜻이죠. 하지만 실제로는 절과 세상이 너무나도 분리되어 왔어요. 절도 시대를 따라야 합니다. 사찰이라고 해서 변화와 혁신의 물결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사찰을 일컬어 사부대중들은 '절집'이라고 부른다. 절집은 어쩌면 '닫혀있고, 세속과 거리를 뒀다'는 의미도 있을 것이다. 옛적 이야기일 것이다. 영천의 팔공산 자락에 자리한 은해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0교구 본사다. 은해사는 산 속의 조용한 사찰이다. 몇 해 전까지만해도 절에 사부대중들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하지만 지금은 그 반대다. 은해사에는 문턱이 없다. 세상으로 나오고 있다.
문턱 없는 은해사의 한가운데엔 2008년 말 주지로 취임한 돈관 스님(사진)이 있다. 스님은 지난 2년 간 은해사에 '혁신'을 불어넣었다. 혁신은 '포교와 교육'이었다. 지역 사회와 더불어 생활불교, 대중불교를 줄곧 실천해 왔다. 실제 그 변화의 바람은 피부에 와 닿았다. 기자가 은해사를 찾았을 때 은은한 클래식 음악이 도량 전체를 휘감고 있었다. 금강경이나 반야심경 같은 독경은 법당 안에서만 들려올 뿐이다. 대웅전 옆 차를 마시는 곳에선 스님과 불자, 방문객들이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여느 절집에선 볼 수 없는 분위기다.
"주지를 맡자마자 가장 먼저 종무소의 문턱을 낮췄습니다. 불자와 방문객들이 스님들에 대한 망설임 자체를 없애야 했죠. 49곳의 말사를 일일이 찾아 고립에서 세상 밖으로, 대중 속으로를 주문했습니다. 저를 비롯한 은해사와 말사의 모든 스님들이 문화유산해설사로 나서 방문객들과 불자들을 맞는 것도 '세상과 호흡하기'입니다."
돈관 스님이 주지로 추대될 당시 그의 세수는 48세로, 전국 최연소 조계종 본사 주지였다. 젊음은 스님의 가장 큰 원군이었다. 중앙종회회원, 경북불교대학장, 대구불교방송 총괄국장 등의 종무 행정 경험은 스님이 은해사에 변화와 혁신을 심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취임 후 스님은 '지역과 함께 하기'부터 시작했다. 영천 등 지역 군부대와 교도소 포교, 장학사업, 복지관 운영 등은 물론 템플스테이에 사찰에선 처음으로 다문화가정을 초대하고 있다. 스님은 지난 남아공 월드컵 기간 중에는 본사와 말사의 스님'종무소 직원들과 함께 절마당에서 족구대회를 열기도 했었다. 또한 스님들은 승복을 벗고 영천경찰서 직원들과의 풋살 경기도 치렀다.
스님은 취임 후 개산대재 1천200주년을 기념해 산사음악회를 마련했었다. 300년 세월의 소나무 숲에서 열린 음악회에서 엄청난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스님은 "대중과의 소통, 특히 지역 주민과의 음악을 통한 문턱 낮추기"라고 했다.
어린이에 대한 관심도 커 탬플스테이, 교사불자회 정기법회 등을 통해 딱딱한 불교가 아닌, 어린이 눈높이에 맞는 불교를 가르치고 있다.
스님의 지역과 함께하기에는 종교와 종파도 초월했다. 성탄절과 부활절이면 지역의 성당을 찾고 있고 봉축대법회는 종파를 떠나 사암연합회를 결성해 불자'시민들과 함께 하고 있다.
스님이 포교와 함께 심혈을 기울이는 것은 바로 '교육'이다. 유치원, 초'중'고등학교를 건립해 인재불사에 매진하고 싶은 것이 스님의 오랜 숙원이다. "젊은이들이 도시로 떠나는 상황에서 10년 후를 생각하면 불교의 미래가 암울합니다. 그래서 교육을 시대의 가장 중요한 포교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은해사는 대구경북을 대표하는 교육 도량이다. 산내 암자 가운데 백련암은 현재 대구 능인중'고등학교의 전신인 오산불교학교가 있었던 곳이다. 1938년 백련암에 오산학림이 설치되고, 1939년 오산불교학교가 설립인가를 받아 1940년 개교했다. 스님은 능인학교 최초 터전인 백련암엔 능인학교 건립 기념비를 제막했다. 은해사 불교대학은 현재 2천200명의 졸업생을 배출했고, 특히 종립 승가대학원은 종단 내 최고 과정의 교육기관으로 현재 배출된 '졸업생 스님'들은 전국의 사찰 강원과 승가대학에서 후학들을 양성하고 있다.
은해사의 소나무숲은 전국 사찰 중 으뜸이다. 2005년 교계에서는 처음으로 자연 친화적 장묘 형태인 '수림장'을 열었다. '수림장'은 화장한 유골을 소나무 아래 묻어 숲과 함께 영생토록 하고 있다. 실제 법당 주위의 솔숲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결코 수림장임을 알 수 없을 만큼 자연친화적이었다. 수림장은 '자연과 인간이 둘이 아니다'는 부처의 말씀을 실천한 것이다. 수림장은 사찰 경영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도 평가받고 있다.
은해사는 영남지역의 대표 사찰로 경산'영천'군위'청송 등 4개 행정구역에 49곳의 말사를 두고 있다. 산내 암자도 8개다. 조선시대 4대 부찰이었고, 1943년까지만 245칸 35개 건물을 거느린 대사찰이었다. 또한 원효'의상'지눌'일연'성철'일타 스님 등 수많은 선지식을 배출한 도량이기도 하다. 또 은해사는 국보와 보물 등 수많은 문화재를 갖고 있으며 이는 경내 성보박물관에 보존'전시되고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추사 김정희의 현판 글씨도 있다.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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