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계산논단] 지방자치와 지방대학

우리나라의 고등교육(대학교육) 일인당 비용은 8천560달러이다. 미국의 4분의 1, 일본 프랑스 독일의 2분의 1수준이다. 일인당 국민소득이 선진국의 3분의 1 정도이니 투자액이 작다고만 할 수는 없다. 선진국은 자원도 있고 축적된 과학기술도 있다. 우리의 특수성은 인적자원밖에 없는 나라라는 것이다.

우리가 1960년대 국민소득 100달러에서 50년 만에 2만달러 소득이 된 것은 서구에서 200년에 걸친 산업화를 30년 만에 달성한 결과였다. 1950, 60년대 대학 교육을 우골탑이라고 했지만 산업화의 역군은 우골탑 출신의 대학생이었다. 1950년대 한국을 보았던 영국 타임스 기자는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를 바라느니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이 피기를 기대하는 것이 낫다고까지 했다. 이승만 정권의 독재, 뒤이어 군사독재가 대한민국의 정치 현실이었다. 남북은 분단되어 민주주의를 거명만 하면 '빨갱이'로 몰아 퇴학, 강제 입대, 고문, 투옥, 사형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민주주의를 이룩하였다. 그 중심에는 한국 대학이 있었다. 오늘의 삼성전자, 현대자동차를 만든 것도 대학이었다. 한국의 대학은 그 시대의 소명을 다했다.

지방선거가 끝이 나고 지방자치단체가 새롭게 출범했다. 화두는 지방경제를 살리자는 것이었다. 믿는 사람은 없다. 선거 때마다 들어 온 말이다. 해법을 다른 데서 찾고 있다. 우수한 기업을 유치하여 지방 경제를 살리자는 것이다. 말은 쉽다. 수도권을 제외하고는 우수한 기업을 유치한 지방을 보지 못했다. 우수한 기업이 찾는 것은 유능한 인재이다. 유능한 인재는 서울에 몰려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나무는 심지 않고 열매만 따려 한다. 기업이 찾는 인재는 키우지 않고 기업만 오라고 한다. 지방자치단체는 지방대학 정책이 전무하다. 수도권 인재의 60%는 지방에서 올라간 학생들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오히려 우수한 인재를 수도권으로 보내는 데 일조를 한다. 교육자치의 수장인 교육감을 뽑았다. 교육감의 일성은 좋은 고등학교를 만들어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제고하겠다고 했다. 대학입학 시기가 되면 각급 고등학교 교문에는 '○○○ 서울대, ○○○ 연세대, ○○○ 고려대 합격', 사진과 함께 걸어놓고 홍보를 한다. 자랑스러운 일이다. 교장선생님이 교사를 독려하여 열심히 교육한 결과 수능시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대에 입학한 것은 개인으로나 학교로서 자랑스러운 일이다. 교육감은 서울의 명문대학에 보낸 교장을 격려하고 지원한다. 그로 인해 지방대학의 쇠퇴, 지방 경제의 몰락, 인구의 감소로 이어지는 자가당착의 진실을 아는지. 대학을 책임지고 있을 때, '서울에 대구 출신 학생 기숙사'를 짓자는 운동이 시장과 기업인, 국회의원 주축으로 벌어진 일이 있었다. 지방에 있는 대학에는 투자하지 않으면서, 서울에 가는 대구의 학생들을 위하여 기숙사를 지어준다면 더 많은 인재를 서울로 보내자는 취지이다. 우수한 인재를 서울에 보내고 다른 한편으로 우수기업을 유치하겠다고 하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예를 들어, 대구의 대학생은 13만9천 명이다. 대학생이 대구에 뿌려주는 돈이 연간 2조원에 달한다. 어떤 기업을 유치하는 것보다 지방 경제에 대한 기여도가 크다. 그러나 지방대학을 지원하는 항목은 지방자치단체 예산 어디에도 없다. 지방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청년 실업이다. 즉 지방대학 졸업생의 취업 문제이다. 지방자치단체는 대회, 축제, 토목사업, 조경에만 돈을 쓴다. 근사하고, 보기 좋고, 편리하지만 먹을 것이 없다. 대구 인구는 줄어간다. 대학의 투자는 빛이 나지 않는다. 시간이 걸린다. 그래도 좋은 기업을 유치하려면 좋은 대학을 만들어 좋은 인재를 육성해야 한다.

21세기는 지식 사회이다. 도시를 대변하는 산업도 빠르게 변한다. 신발의 도시 부산, 섬유의 도시 대구는 과거 이야기이다. 엔카르타 백과사전은 도시의 상징에 산업을 넣지 않고 그 도시의 대학을 소개하고 있다. 지식사회를 대변하는 것은 대학이다. 언론과 평가사들이 대학 평가를 한다. 예외 없이 좋은 대학이 있는 곳은 선진국이다. 좋은 대학은 학생 일인당 교육비가 높은 대학이다. 지방대학은 양질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못 된다. 지방대학도 투자만 하면 명문 대학이 된다. 포스텍이 그 전형이다. 우수기업을 유치하기 위해 지방자치단체가 어디에 정책의 우선순위를 두어야 할까?

박찬석 (전 경북대 총장'전 국회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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