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사면(赦免)

예로부터 사면은 절대권력자의 필요나 사회 전통에 따라 행해진 관행이었다. 법 위에 선 제왕적 권력자의 특권이었던 것이다. 은사(恩赦)라는 이름으로 죄수를 풀어주고 대신 권력자는 자기 명예를 드높이는 다분히 정치적인 행위였다. 긍정적인 시각도 있지만 부작용 또한 만만찮았기에 이를 제한하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독일 법언에 '사면 없는 법은 불법'이라는 말이 있다. 하지만 성문법의 전통이 강한 현대 독일의 경우 사면에 대해 매우 엄격하다. 독일 헌법재판소는 1969년 특별사면의 위헌성 여부를 검토해 특별한 경우에 한해 특사령을 발동하도록 감시하고 있다. 그 결과 지난 60년 동안 겨우 4차례만 특별사면이 이뤄졌다.

반면 우리의 경우 정부 수립 이후 일반'특별사면 합해 모두 94차례의 사면이 단행됐다. 거의 사면권 남용 수준이다. 광복절을 앞둔 올해도 예외가 아니다. 경제계가 최근 김우중'이학수 씨 등에 대한 특별사면을 청와대에 건의했다. 노건평'서청원 씨 등의 특별사면도 검토되고 있다고 한다. 사면권의 취지나 의미와 상관없이 이를 남발하는 것은 심각한 후유증을 낳을 수밖에 없다.

지난 2007년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은 '혁명기념일' 대사면을 거부했다. 혁명기념일 대사면은 프랑스의 오랜 관행이다. 그러나 사르코지는 이를 깼다. 법원이 단죄한 범법자를 정치인이 뒤돌아서서 봐준다면 법치주의가 허물어진다는 이유에서다. 관례를 무시한 사르코지에 대해 톨레랑스(관용)도 모르는 인색한 사람이라고 불평할 수 있겠지만 70%가 넘는 프랑스 국민들은 그의 결정을 지지했다.

'좋은 게 좋다' 식의 우리의 사면권 남용은 심각한 상대적 박탈감을 초래할 가능성이 크다. 부정부패나 탈세'횡령 등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범법자를 봐주고 판결문 잉크도 마르기 전에 특사로 내보낸다면 누가 법을 지키고 사회 정의를 보편적 가치로 존중할 것인가. 그래서 철학자 칸트는 '사면은 대권 가운데서도 가장 음흉한 것'이라고 말했다. '관자'(管子)에도 "사면의 이익은 적고 해악은 크다. 사면을 없애면 작은 해악은 있어도 이익은 크다. 사면은 달리는 말의 고삐를 놔 버리는 것과 같다"는 구절이 있다. 자유선진당 박선영 의원이 어저께 대통령의 사면권을 제한하는 내용의 사면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눈 크게 뜨고 지켜볼 일이다.

서종철 논설위원 kyo425@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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