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념을 떠나 오로지 한 가지 대상에만 집중하는 경지인 삼매(三昧). 어른도 쉽지 않은 삼매의 경지에 경북대사범대부설초등학교 2학년 이다현(9) 양은 곧잘 빠져든다. 독서 삼매경. 자정을 넘기고도 책에 빠져 있는 다현 양을 어머니 박영숙(38) 씨는 자주 깨워(?) 잠을 청하게 한다.
다현이는 책 읽는 재미를 "책 안으로 직접 들어가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방학을 맞은 요즘 읽는 책은 판타지 소설 '고슴도치 대작전'. 제법 두꺼운 책인데도 반나절 만에 절반분량을 돌파한 다현이는 취재 중에도 책을 손에서 뗄 줄을 몰랐다.
"장래희망이 외교관입니다. 그래서 UN에서 반기문 총장님과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제 꿈을 이루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서 제 꿈을 꼭 이루겠습니다." 워드로 작성한 다현이의 자기 다짐이다. 다현이의 한 달 평균 독서량은 100여 권. '그리스로마신화'는 100번도 더 봤다. 네 살 때 한글을 익히기 시작하면서 유독 책을 좋아했고 유치원 시절 이미 100권의 책을 읽었다. 박 씨는 다현이가 읽은 책 제목을 직접 기입한 목록을 보여줬다.
아버지 이성수(40·회사원) 씨는 "취학 전부터 책 읽기를 좋아하기에 처음엔 한두 권씩 구입해 읽게 했으나 다현이의 독서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집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려다 읽게 했다"고 거들었다.
다현이의 독서습관은 가족 모두에게로 옮아갔다. 매주 한 번 이 씨네 가족은 빠뜨리지 않고 도서관으로 향한다. 북부청소년문화회관, 북부도서관, 중앙도서관이 주로 애용하는 곳들이다. 한 번 가면 이들 손엔 25~30권의 책 뭉치가 들려진다. 동화, 만화, 어학, 위인전 등 장르를 망라한다. 대출기간은 평균 열흘. 그래도 반납 날짜를 어긴 일은 없다. 다현이 덕분에 그야말로 가족이 독서를 생활화하고 있는 셈이다.
그 결과 이달 초 다현이 가족은 중앙도서관 주최 '2010 책 읽는 가족'에 뽑혀 인증서와 조그마한 현판을 받았다. 모두 세 가족을 뽑은 이번 시상식에서 다현이 가족은 책수에서 단연 선두였다. 지난 한 해 동안 읽은 책은 모두 1천145권. 아빠 248권, 엄마 248권, 다현 403권, 다빈 245권이다. 장르별로는 어린이 만화 등을 제외한 순수과학 168권, 문학 480권, 역사 222권이다.
"다현이는 책에서 롤 모델을 많이 삼아요. 오프라 윈프리의 전기를 읽곤 나름의 미래 계획서를 쓰기도 했답니다. 책 속에서 다양한 꿈을 꾸며 미래의 자신을 그리는 것 같아요."
박 씨에 말에 옆에 있던 동생 다빈(6) 양이 얼른 책을 집어들었다.
그렇다고 다현이가 정적인 생활만 하는 것도 아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바깥에서 뛰어놀 때는 누구보다 적극적이고 활발하다. 그러다가도 책만 들면 보통 1, 2시간은 꼼짝 않고 독서에 열중한다. 다현이는 속독과 다독을 하지만 내용을 허투루 읽는 법이 없다. 박 씨에 의하면 자기 책을 다 읽고 엄마가 빌린 '마시멜로의 이야기'를 읽고 있어 다 본 후 내용을 물어봤더니 되레 엄마가 기억하는 책 내용보다 더 자세히 알고 있더라는 것. 또 다현이는 책을 읽다가 좋은 글귀나 말이 있으면 따로 메모도 해두는 습관을 갖고 있다.
'미국의 디즈니랜드 입구에는 이런 말이 있다. 이 말은 단 하루도 잊지 말아야 한다. 당신이 꿈을 꿀 수 있다면 당신은 그것을 이룰 수 있다. 관심, 관심을 가져라.'(다현 양이 메모한 내용의 일부)
박 씨는 "그제야 '아이가 집중력과 이해력을 갖고 독서를 하는구나'하며 명품 습관을 지닌 어린 딸이 대견스러웠다"고 말했다. 취학 전 다현이와 엄마는 실 제로 미국 디즈니랜드로 독서추억여행을 가서 책에서 본 이 글귀가 있는지 눈으로 확인했다. 요즘 박씨가 신경 쓰는 부분은 다현이의 독서 편식을 막기 위해 다양한 장르의 책을 골라주는 일이다.
경대사대부초 2학년 3반 복도엔 교내 백일장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다현이의 글이 액자에 걸려 있다. 올 여름방학 다현이의 독서목표인 영어책 100권 읽기를 위해 집(대구 중구 봉산동) 부엌 벽엔 1권 읽을 때마다 엄마가 붙여주는 칭찬스티커 보드가 놓여 있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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