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뛸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난 행복했다"…양준혁

타격왕 최다안타 최다타점…'프로야구의 전설' 써온 양준혁, 18년 야

"나는 항상 나 자신을 채찍질하고 반성하는 스타일이다. 변화하지 못하면 도태되기 때문이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야구선수의 생존 비결이라 생각한다.(중략) 올 시즌 나는 최고령 선수라는 타이틀을 달고 후배들과 경쟁해야 한다. 만약 내가 조금만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면 '나이를 속일 수 없다'라는 이야기들이 나올 것이 뻔하다. 그런 소리를 듣고 싶지 않다. 올 시즌에는 부상 없이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고 싶다. 그것이 야구 인생을 살기로 한 내 스스로의 결정이자 영원한 목표이기 때문이다."(양준혁 '나의 인생 자서전')

만 41세로 프로야구 현역 선수 중 최고령인 양준혁은 늘 자신에게 채찍을 가했다. 그것이 그의 야구인생이었다. 하지만 그가 보여준 호쾌한 만세타법은 올 시즌을 끝으로 더 이상 볼 수 없게 됐다. 18년간의 야구인생을 정리하기로 한 양준혁은 "그동안 구단과 정말 많은 팬들의 사랑과 관심으로 오늘의 양준혁이 있었다.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고 즐거웠다. 과분한 사랑을 받은 점 가슴깊이 팬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했다.

1993년 대구상고-영남대를 졸업한 양준혁은 삼성의 푸른 유니폼을 입고 뛴 그해 타율 0.341를 치면서 타격왕과 신인왕을 독차지했다. 1997년에는 30홈런 고지에 올랐고 1998년에는 다시 0.342의 높은 타율을 작성하면서 타격 부문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거꾸로 잡아도 3할은 친다'는 수식어가 붙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1998년 시즌 뒤 해태의 마무리 임창용 영입으로 원치않던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게 된 것. 1999년 시즌 후엔 선수협의회 파동으로 영구제명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선수협의 실체를 인정받고 해태로 복귀했지만 2000년 시즌 개막 직전 다시 LG로 트레이드 됐다. 2001년 자유계약선수(FA) 자격을 얻으며 시즌 후 다시 푸른 사자의 유니폼을 입게 된 그는 2002년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됐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데뷔 10년 만에 처음으로 3할 타율 진입에 실패(0.276)한 해가 됐다. 양준혁은 "내게 닥친 첫 위기였다. 그 위기를 타격 자세변화로 극복했다. '만세타법'이 그것이었다"고 했다. 이듬해 다시 타율을 0.329로 끌어올리며 부활한 양준혁은 골든 글러브 8회(1996~1998, 2001, 2003, 2004, 2006,2007) 수상을 비롯, 타격왕 4회(1993, 1996, 1998, 2001), 최다안타(1996, 1998), 최다타점 1회(1994) 등 화려한 수상기록을 남기며 전설을 써왔다. 꾸준한 활약에 타자부문 통산 기록이 그의 것이 됐다. 통산 최다경기 출장(2,131경기), 최다안타(2,318개), 최다홈런(351개), 최다타점(1,389개), 최다득점(1,299개), 최다 사사구(1,380개) 등 도루를 제외한 전 부문 맨 윗자리에는 어김없이 양준혁의 이름이 있다. 올시즌엔 대타로 타석에 들어서는 신세가 됐지만 여전히 기록 경신은 계속되고 있다.

최두성기자 dscho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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