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금오산의 철탑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구에서 구미 쪽으로 가다 남구미IC 못 미쳐 낙동강대교를 지나면 정면에 나타나는 산이 금오산이다. 그런데 산의 능선이 영락없이 사람의 얼굴 옆모습이다. 고 박정희 대통령 생가가 산자락에 있어서인지 이 인물의 주인공이 박 전 대통령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 벌써 인구 40만을 넘긴 구미시의 발전사에 박 전 대통령을 빼고는 얘기할 수 없기 때문인지 '큰바위 얼굴'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10'26사태로 박 대통령이 서거하자 흉흉한 얘기가 나돌았다. 금오산 정상이 큰바위 얼굴의 이마에 해당하는데 여기에 철탑이 박혀 있으니 그 인물이 변을 당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그럴듯한 얘기였다. 그만큼 금오산 정상의 철탑은 구미 시민에겐 눈엣가시였다.

그 철탑이 57년 만에 철거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구미시는 올 하반기 중 미군 측과 금오산 정상(해발 976m)에 설치된 미군 통신 기지 반환 협정을 체결한다고 밝혔다. 반환 협정이 체결되면 내년 상반기까지 통신 기지 일부를 철거하고 금오산 정상을 자연친화적으로 단장해 등산객들에게 개방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금오산은 해발 1,000m도 안 되지만 시내 쪽에서 치고 올라가면 가파르기 그지없다. 경사가 얼마나 급한지 도중에 편히 앉아 쉴 만한 공간조차 내주지 않는다. 대부분이 할딱고개라 할 정도로 허겁지겁 올라가면 현월봉 표지석이 보인다. 그러나 정작 정상은 철망이 쳐진 미군 기지가 점령하고 있어 밟아보지 못하고 하산해야 하니 아쉽기 짝이 없다.

금오산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은 채미정(採薇亭).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들어서자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며 벼슬을 버리고 금오산으로 낙향, 지조를 지킨 야은 길재(吉再)를 모신 곳이다. 오백 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그가 남긴 유명한 시조다.

비록 조선을 섬기지 않았지만 그의 절개에 탄복한 숙종이 오언절구 어필을 남겼다. '청림한 기풍은 엄자릉에 비하리라'(淸風比子陵)는 대목이 눈길을 끈다. 엄자릉은 후한 광무제의 죽마고우로 그의 배 위에 발을 올려놓고 잘 정도로 절친했으나 광무제의 권력욕에 실망, 평생 은거하며 낚시를 즐긴 사람이다.

꼭대기에 걸린 달이 얼마나 좋았으면 현월봉(懸月峰)이라 했을까. 이제 철탑이 아닌 구름에 걸린 진짜 금오산 달을 곧 볼 수 있게 될 것 같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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