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처음 집을 지으시며 차고를 함께 만드셨다. 빈 차고를 바라보며 그 안에 들어갈 멋진 승용차를 상상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국내 첫 고유 모델인 '포니'가 출시되던 해, 포니를 비어있던 차고에 넣으셨다. 그 후 몇 번이나 새 차를 바꿀 정도로 자동차 마니아였던 아버지는 사업에 큰 일이 닥쳐 과수원으로 옮겨갔을 때에도 맨 먼저 차고를 만드셨다. 좋은 차는 이슬을 맞으면 안된다는 게 이유였다. 아버지는 '로얄살롱'을 곧 차고에 넣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때 가지고 간 차를 십년이 넘게 타야 했다. 두어번 차를 바꾸기는 했지만 같은 종류의 중고 픽업 트럭이었다. 어떨 땐 오십만원, 혹은 백만원짜리 중고차에 농업용 기름을 넣고 다녔다. 달릴 땐 기운 센 경운기 소리가 나고 도중에 시동이 꺼지기 일쑤인, 한마디로 무늬만 차였다. 간혹 아버지가 "차고를 새로 지어야 하는데···"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릴 때가 있었지만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알지 못했다.
세월이 흐르고, 대학엘 가고, 우리는 취직을 했다. 사과나무가 뽑힌 자리엔 일년생 채소가 자라났다. 그리고 이슬이 내리면 큰일 날 자리엔 우박이 들이쳐도 꿈쩍 않을 녹슨 픽업이 가난한 날의 동지처럼 변함없이 의리를 지키고 있었다. 우리는 가능성 없는 꿈들에 대해 포기하는 법을 배우며 아버지에게도 로얄살롱의 꿈이 사라진 줄로 여겼다. 하지만 그게 아니란 걸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 아버지가 차고를 새로 지어야 한다고 다시 말씀하셨을 때였다. 그때는 부랴부랴 집을 옮기느라 차고를 대충 만들었다는 게 이유였다. 그건 아버지가 로얄살롱의 꿈을 한 번도 지운 적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7년 전 어떤 이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 나의 계획을 들은 그가 코웃음을 쳤다. 주제를 알고 꿈을 꾸라는 의미로 느껴져 기분이 좋지 않았다. 당시 상황으로선 당연한 반응이었을 테지만 나는 "두고 보세요. 십년 안에 꼭 그렇게 될 겁니다."라고 말하고 말았다. 그는 "어떻게?" 라고 반문했고 그에 대한 대답은 할 수 없었지만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이 틀림없이 방법을 알려줄 것이라 믿었다. 그로부터 5년 후 매출은 그때 말한 수치에 정확히 도달했다.
아버지는 늘 차가 생기기도 전에 차고를 먼저 만드셨고, 꿈꾸는 멋진 차를 한 번도 차고에 넣어본 적 없지만, 지금도 아버지의 설계도면 안에는 3.5평짜리 차고가 그려져 있다. 아직도 남아있는 빚 속에서 로얄살롱을 넣을 방법은 묘연할 것이나 그 차에 어울릴만한 차고를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은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모든 것의 시작일 것이다.
김계희<그림책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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