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름 스포츠의 꽃 수상스키

물찬 제비처럼 뛰어오르니, 더위는 포말로 부서지고…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는 모터보트를 쫓아 지그재그로 달리는 수상스키는 타는 사람도 즐겁지만 보기에도 시원하다. 그래서 수상스키는 '여름 스포츠의 꽃'으로 대접받는다. 그럼에도 불구,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일반인들로부터 이유없이 외면받기도 한다. 그러나 수상스키는 조금만 '단순'무식'용감'해진다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운동이다. 수상스키를 즐기기 위해 굳이 먼 곳으로 갈 필요도 없다. 대구 봉무동 단산 저수지, 칠곡 지천 저수지, 영천 풍락 저수지, 김천 오봉 저수지 등 대구 인근에도 수상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많다.

20일 오후 생전 타 본 적이 없는 수상스키를 타기 위해 찾은 곳은 봉무공원에 위치한 단산 저수지. 산으로 둘러싸인 저수지라 바람도 적고 물살도 잔잔해서 수상스키를 즐기기에 최적지로 꼽히는 곳이다. 상큼한 물 냄새, 풀 내음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평일 오후인데도 5, 6명의 사람들이 '물질'에 여념이 없다. 주말엔 80명 넘게 찾는다고 한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와서 수상스키를 즐기는 직장인들도 있어요. 아직 보편화되지 않았지만 조깅이나 자전거처럼 생활스포츠로 즐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습니다." 경력 20년의 대구수상월드 조귀흠 대표는 "수상스키는 전문가들만 즐길 수 있는 특별한 체험레포츠가 아닌 생활레포츠"라고 강조했다.

수상스키를 타기 전 조 대표의 이론교육이 10여 분 진행됐다. "출발 전 물 속에서 팔다리를 모으고 엉거주춤 앉아 있으면 됩니다. 발목을 위로 꺾어 어깨너비로 벌리고 가슴을 다리에 붙여야 합니다. 팔은 쭉 펴고 스키가 수면으로 자연스레 떠오를 때까지 절대 잡았던 봉을 당기면 안 됩니다."

초보라 보트 옆에 연결된 봉을 잡고 타는 봉스키로 시작했다. 처음 타는 수상스키라서 두려움과 설렘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저수지라는 사실 자체가 자연스레 두려운 마음을 일으킨다. 물론 이곳은 예외지만 저수지는 각종 익사사고와 사체 유기, 괴기담의 단골무대가 아닌가. 이런 마음을 아는지 단산 저수지가 살랑살랑 물결을 일으키며 유혹(?)한다. 이런저런 걱정을 뒤로 하고 구명조끼를 몸에 걸치고 조심스레 스키 위 바인딩에 맨발을 집어넣었다. 발가락이 꼬물꼬물 움직이는 게 착용감이 싫진 않다.

만반의 준비를 끝내고 푸른 물속으로 '첨벙!' 하고 뛰어들었다. 이어 온몸을 동그랗게 만든 뒤 쭈그리고 앉았더니 '공중부양하는 도사'처럼 자연스레 물위로 떠올랐다.

30℃를 오르내리는 불볕더위였지만 물속은 한결 시원했다. 모터보트가 부릉부릉 하고 시동을 걸었다. 덜컥 겁이 났지만 '이왕 이렇게 된 거 한번 해 보자' 하는 마음에 봉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출발!' 마음의 준비가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갑자기 보트가 출발한다. 곧이어 보트와 두꺼운 물벽이 이루는 마찰력이 손과 발을 통해 온몸에 전해진다. 잠깐 수면으로 떠오르는 찰나, 몸이 휘청하면서 균형을 잃고 앞으로 처박혔다. 생각지도 못한 물세례가 코와 입으로 쏟아진다.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왜 실패했는지 감도 안 잡힌다.

"먼저 일어나려고 하지 말고 기다려야 합니다." 조 대표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시 자세를 가다듬고 출발했지만 결과는 또 실패다. 슬슬 오기가 났지만 이번엔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서너 차례 실패를 하고 나니 다리가 후들거리고 봉을 잡은 손이 자꾸 미끄러진다. 이론교육 시간에 열심히 듣고 따라하며 공부했던 내용이 하나도 생각나지 않는다.

일단 후퇴. 물밖으로 나오니 팔다리 근육이 웨이트 트레이닝을 한듯 천근만근이다. 휴식을 취하면서 이론교육부터 다시 받았지만 물에 대한 두려움은 가시지 않는다.

극약처방이 내려졌다. 수상스키가 아닌 모터보터를 타고 고수가 타는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지기로 한 것. 마침 방학 중이라 대구에 내려와 연습중인 수상스키 국가대표 조범근 선수가 직접 조교로 나섰다. 고수는 역시 달랐다. 왼쪽 오른쪽으로 시원스럽게 물살을 가르다가 한 순간 하늘로 휙 날아오른다. 공중에서 슬로모션처럼 빙그르르 한 바퀴 돌더니 수면 위로 사뿐히 착지한다. 수면을 시원스럽게 쫘악 가르다가 두툼해진 물결을 차고 공중에 붕 뜨는 모습은 한마디로 물찬 제비다.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여유 있게 물살을 가르는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나도 할 수 있다'는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생긴다.

심기일전해 다시 도전에 나섰다. 편안한 마음으로 '물속으로 곤두박질쳐도 좋으니 물이 나를 태워줄 때까지 끝까지 한 번 기다려 보자'는 심정으로 기다렸다. 잠시 몸이 물 속으로 가라앉는가 싶더니 수면 위로 붕 떠오르는 게 아닌가. 서서히 쭈그렸던 몸을 일으켜세웠다. 일단 물 위로 오르고 나서야 '수상스키의 참맛이 이런 거구나' 하는 느낌이 온다. 얼굴에 강하게 맞부딪쳐 오는 바람, 발 밑에서 갈라지는 하얀 물보라…. 입에서 저절로 '난다, 날아!' 하는 괴성이 터져나온다. 더위는 물론 스트레스까지 확 날아가 버린다. 무사히 수상스키를 마쳤지만 며칠 동안 공중으로 붕 떠올라 물살을 가르는 쾌감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최창희기자 cchee@msnet.co.kr

사진'정운철기자 wo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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