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파트 크기 줄이고, 남는 집 팔고… '다운사이징'시대

지난 달 딸을 결혼시킨 이인철(가명·52·대구시 달서구 대곡동) 씨는 140㎡짜리 아파트를 팔고 85㎡ 이하의 중소형 아파트로 옮길 계획이다. 이 씨는 "아내와 함께 단 둘이 사는데 관리비가 많이 드는 큰 아파트에 계속 있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며 "중대형 아파트의 가치도 떨어지고 있는 데다 노후 자금도 마련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아파트로 이사갈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택시장이 실수요자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주택 다운사이징'(downsizing, 축소)'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크기를 줄이고, 집이 여러 채인 사람은 여분의 집을 처분하는 추세다.

부동산업계에 따르면 과거엔 시세차익을 얻기 위해 은행 대출까지 받아 중대형 아파트로 '업사이징(upsizing, 확대)'을 했다면 최근엔 주거개념이 실수요 중심으로 바뀌면서 다운사이징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것. 중대형 아파트를 팔고 원룸을 구입할 예정인 이모(49·대구시 북구 침산동) 씨는 "과거 중대형 아파트는 시간이 지날수록 값이 올라 은행 금리보다 수익률이 높았다. 그래서 너도 나도 아파트, 특히 중대형 아파트 갖기를 원했다"며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큰 아파트는 관리비가 비싼 데다 이젠 작은 아파트에 비해 가치가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큰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 중 대부분이 작은 아파트나 주택으로 이사갈 생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다운사이징 현상은 ▷올해부터 시작된 베이비부머(1955~1963년생)의 은퇴 ▷고용불안 ▷사교육비 부담 ▷노후생활 불안정 등도 원인이 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하나금융연구소는 '중장기 주택시장 변화 요인 점검 및 전망' 보고서에서 베이비부머 중 주택과 부채를 동시에 보유하고 있는 가구가 71.5%에 이르며, 이들은 퇴직 이후 부채상환이나 노후 자금 마련을 위해 소유 부동산을 처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대구 수성구 만촌동 권오인공인중개사 권오인 대표는 "살던 아파트의 규모를 줄여 작은 아파트로 옮기거나 아예 원룸 등 수익형 건물을 매입하는 식의 '자산 리모델링'을 하는 사례들이 더러 있다"며 "정년 퇴직을 앞둔 사람들 중심으로 관련 상담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무원 김모(50) 씨는 "퇴직 후 일자리 보장도 없고 연금으로 생활하기에도 어려울 것으로 판단돼 살던 집을 처분하고 대출을 받아 2층에 주택이 딸린 상가를 구입할 예정"이라며 "점포 월세를 놓으면 은행 이자보다는 수익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수성구 범어동 제니스공인중개사 이민환 대표는 "50대 전후의 중년층에서 중대형 아파트를 팔고 수익형 다가구주택 등을 구입해 고정 수입원을 확보하려는 사례들이 잇따르고 있다"며 "그동안 중대형 아파트 자체가 재테크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시세차익을 노리는 것보다 안정적인 수익형 건물을 찾아야 한다는 얘기가 중년층 사이에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현대경제연구원은 '부동산 시장 미스매치 부각되나'란 보고서를 통해 대형 아파트 값의 하락 요인으로 대형 주택이 필요한 가구가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 구조의 변화를 꼽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핵가족화와 고령화가 진전되고, 이혼율이 높아져 3인 이상 가구 비중이 2000년 68.9%에서 올해 60.5%로 낮아지고 2030년에는 52.6%로 예상된다는 것.

주택 다운사이징의 여파로 대구의 수성구, 달서구 등 아파트 단지 밀집 지역의 3.3㎡(평)당 거래가격은 작은 평형이 큰 평형보다 10% 정도 더 비싸고, 대구지역 미분양 아파트(국토해양부 자료, 5월 말 기준)의 경우 85㎡ 이하 규모가 전체 미분양 물량 중 34.5%로 85㎡ 초과 규모보다 훨씬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김교영기자 kim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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