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 급성골수성백혈병 앓는 이부영씨

"장애 남편 대신 가족생계 책임져야 하는데…"

장애 남편을 두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부영 씨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아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장애 남편을 두고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부영 씨는 급성골수성 백혈병을 앓아 앞날이 막막하기만 하다.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26일 부산시 서구 아미동 부산대병원 10층 병동에서 만난 이부영(40·여·경산시 상방동) 씨의 얼굴은 창백했다. 독한 항암제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삼켜버렸다. 부영 씨는 급성골수성백혈병 환자.

그래도 아들 민섭이(12)는 "우리 엄마가 제일 예쁘다"고 말했다. 부영 씨의 남편 정순모(42) 씨는 이런 아들을 말없이 바라볼 뿐이다.

◆"드라마에서나 있는 일인 줄 알았는데…."

반복되는 항암치료 때문에 기운이 죄다 빠져버려서일까. 부영 씨는 "자꾸 식은땀이 흐른다"고 했다. 병실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었지만 부영 씨는 손수건으로 줄곧 땀을 닦아냈다.

그녀가 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안 건 5월 말쯤이었다. 부영 씨는 2년 전부터 매일 밤 대리운전을 했다. 선천성 소아마비로 다리를 저는 남편이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자 자신이 돈을 벌어야 했다. 남들이 자는 시간에 술에 잔뜩 취한 손님들을 집까지 바래다주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무럭무럭 자라나는 아들과 사랑하는 남편을 위해 밤마다 운전대를 잡았다. 순모 씨는 "아내가 몸을 안 돌보고 일만 하다가 병을 얻은 것"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부영 씨는 "처음에는 감기 몸살이라 생각하고 일을 쉬며 며칠 동안 누워 지냈다"고 했다. 하지만 머리가 심하게 아파왔다. 그렇게 일주일을 버텼는데 두통이 사라지지 않아 경산의 한 병원을 찾아갔다. 의사는 단순한 감기가 아닌 것 같다며 종합병원에서 검진을 받아보라고 했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급성골수성백혈병 진단을 받은 것. 순모 씨는 "백혈병은 드라마 속 여주인공들이나 걸리는 병인줄 알았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영 씨 가족은 갑자기 찾아온 불행을 인정할 수 없었다.

◆"듬직한 아들, 그래도 걱정돼…."

고향이 부산인 부부는 부영 씨의 치료를 위해 부산대병원으로 향했다. 하루라도 빨리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했기 때문이다. 경산에 혼자 남은 아들이 걱정돼 순모 씨는 부산과 경산을 오가며 모자를 보살폈다. 2주 전에는 부영 씨의 상태가 조금 나아져 1차 항암치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암세포는 끊임없이 부영 씨를 공격하고 있었다. 그렇게 다시 이틀 만에 집을 떠나 부산대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이런 엄마에게는 그 누구보다 듬직한 아들이 하나 있다. 민섭이는 슬퍼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혹시라도 엄마가 가슴 아파 할까봐 "엄마가 아프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안 울었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대신 엄마가 보지 않는 곳에서 아빠를 붙들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민섭이는 초등학교 마지막 여름방학을 부산에서 보내고 있다. 밥을 챙겨주고 아이를 보살펴줄 손이 필요한데 대구에는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아들은 부산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지내며 엄마 곁을 지켜준다. 민섭이는 "혼자서도 밥을 잘 챙겨 먹는다"고 자랑했다. 엄마가 집에 없어도 잘 할 수 있다고 말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 걱정이 앞선다. 밥은 잘 챙겨먹고 다니는지, 학교에서 공부는 잘 따라가고 있는지, 하나부터 열 가지 챙겨줘도 모자란데 아픈 엄마는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다.

◆보험이 없는 인생

인생의 불확실성을 보장해 주는 게 보험이라지만 부영 씨 가족처럼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살아가는 이들도 있다. 돈없는 사람들에게 보험은 사치다. 부영 씨는 암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 한 달에 10만원 넘게 넣어야 하는 보험료가 부담스럽기도 했고, 암세포의 공격을 당할 것이라는 예상을 전혀 하지 못해서다. 운전이 직업인 그는 상해보험에 가입했을 뿐이다. 그래서 입원비와 치료비는 고스란히 이들 가족의 몫이 됐다.

1차 항암치료를 마치고 낸 병원비는 900여 만원. 기초생활수급자인 부영 씨 가족에게 큰돈이 있을 리 없었다. 일단 주변에서 빚을 내고 경산시청의 도움을 받아 급한 불은 껐지만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계속해서 항암치료를 받으려면 병원비가 1천만원이 넘게 필요하다. 이들은 다시 불어나는 병원비 걱정을 해야 한다.

현재 부영 씨 가족의 수입은 한달에 60만원 정도. 기초생활수급비 30만원과 남편의 장애수당 등을 모두 더해도 병원비는커녕 세 식구 생활비로도 모자란다. 순모 씨는 "주변 친척들도 아내가 아픈 걸 알고 있지만 다들 제 입에 풀칠하고 사느라 바빠 도와줄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며 "내가 몸이 성하면 일을 하겠지만 그럴 수 없어 더 속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부영 씨 가족은 희망을 품고 있다. 드라마 같은 불행이 찾아왔다면 드라마 같은 기적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엄마한테 꼭 맞는 골수를 찾아 수술도 하고, 세 식구가 다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적이 일어나게 해달라고 민섭이는 매일 밤 기도한다.

채정민기자 cwolf@msnet.co.kr

황수영 인턴기자 swimmi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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