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8년 5월, 롯데그룹은 부산시에 선물 보따리를 풀었다. 1천여억원을 들여 1천500석 규모의 오페라하우스를 지어 부산시에 기부하겠다고 밝힌 것. 롯데는 또한 영도대교 철거와 복원에 소요되는 공사비 850억원 전액을 부담키로 했다. 부산 북항 일대의 개발사업권을 따내 부산 롯데타운을 만들겠다는 롯데의 야심찬 전략을 허가하는 대가로 부산시가 얻어낸 것들이다. 이곳에는 백화점을 비롯해 제2롯데월드 등이 들어서 부산의 또 다른 도심지로 거듭날 전망이다.
◆제것도 못챙기고 빗장 마구 푸는 대구시 = 롯데가 이렇게 부산에 공을 들이는 것은 부산에서 장사가 잘 되기 때문이다. 롯데카드 회원 중 30%는 부산시민이고, 부산에만 4개의 롯데백화점이 들어서 1조4천억원(광복점 제외)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롯데는 이 밖에 울산에 240억원의 과학관을 설립해 기부했다.
부산과 비교해 규모가 절반 수준이지만 롯데의 대구지역상권 진출도 적은 비중은 아니다. 현재 롯데 대구점과 상인점, 영플라자, 롯데쇼핑프라자가 영업 중이며 내년 상반기 중 라이프스타일센터까지 문을 열 예정이어서 지역의 롯데 계열 유통업체는 5개에 달할 전망이다. 매출도 지난해 연말 기준 6천500억원(대구점·상인점·영플라자)에서 훌쩍 뛰어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롯데는 대구에 기여한 것이 별로 없다. 지역경제계의 한 관계자는 "대구시가 협상 없이 롯데에게 안방 시장을 내줬기 때문에 아예 기여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라며 "고작해야 지역 금융과 업체 이용 정도를 요구하는 대구시에 수백억원 선물을 안겨줄 이유가 뭐 있겠냐"고 분개했다.
유통대기업의 역내 진출에 대한 견제 및 협상 자세에서 다른 지자체는 대구시와 판이하게 다르다. 대전시는 신세계그룹에서 복합 쇼핑몰인 첼시 아울렛을 유치하는 조건으로 지역사회 환원사업 차원에서 지역 연고의 프로축구팀인 '대전FC'를 지원하고, 나아가 인수하는 방안까지 적극 검토해줄 것을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광주시는 신세계백화점 입점을 조건으로 현지법인화 요구를 관철시켰고 신세계장학회 건립과 광주비엔날레지원, 광주 신세계 쿨켓 여자농구단 운영 등의 성과를 얻었다.
◆고작 푼돈으로 지역기여?
대구는 IMF 외환위기를 거치면서도 대구백화점과 동아백화점 등 지역 백화점들이 굳건히 뿌리내린 유일한 도시로 손꼽혔지만, 대구시의 무분별한 유통시설 허가 남발로 인해 이제 지역업체는 풍전등화 처지가 됐고 외지 자본들만 몰려들어 시민들의 지갑을 싹쓸이하고 있는 상황이 됐다. 가뜩이나 제조업 기반시설이 전무하다시피 한 상황에서 대구시가 '개발'을 명목으로 판매시설 허가를 남발하다 보니 거대 유통공룡들의 각축장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현재 대구의 주요 상권을 차지하고 있는 대형 유통업체는 백화점 6곳, 아울렛 10곳, 대형마트 18곳, SSM 27곳 등이다. 이 중 상당수는 롯데, 이랜드, 신세계, 홈플러스 등 외지에서 진출한 대형 유통자본들이 운영하고 있다.
올 하반기와 내년을 거치면서 유통업계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대백화점과 롯데라이프스타일센터(동구 봉무동)가 추가로 들어서고, 대형 마트도 적어도 1, 2개가 더 추가될 예정이다. 대구스타디움에 건설되는 칼라스퀘어 등 복합몰도 기존 지역 상권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많은 판매시설이 들어서지만 대구시가 기업으로부터 얻어낸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개발을 위해 서민들이 희생했다면 이를 보상할 만한 뭔가가 주어져야 하지만 사실은 기업 배불리기에 불과했던 것이다.
뒤늦게 26일 대구시가 지역생산 물품 구매, 지역 금융·용역서비스 이용, 지역 업체 매장 입점 여부 등 지역기여도를 따지겠다고 나섰지만 이 정도로는 사실상 서민 경제에 코끼리 비스켓도 안 된다. 유통업체의 특성상 고용은 대부분 계약직이나 파견근로 형태로 이뤄지는 데다, 수요에 한계가 있는 대구 시장의 특성상 한 점포에 브랜드가 입점하게 되면 로드숍이나 다른 점포에서는 브랜드가 철수해야 하는 이른바 '윗돌 빼서 아랫돌 괴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유통업계 한 인사는 "지금 대구시가 요구하고 있는 정도의 지역기여는 대기업이라면 당연히 행해야 할 '노블레스 오블리주' 수준도 안 된다"며 "대구도 다른 도시처럼 개발권을 주는 대신 시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통큰 요구를 해야 하는데 이런데 대한 철학조차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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