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군적 현실주의』(Crusading Realism) 라몬트 콜루치 저, 2008, University Press of America)
21일 한국을 방문한 미국의 국무장관 힐러리 클린턴과 국방장관 로버트 게이츠가 판문점을 방문했다. 언론에서는 이들의 판문점 방문을 수천마디 말보다 더 강력한 대북 경고 메시지라고 분석했다. 한국의 외교·국방장관과 함께 2+2회담도 개최하였다고 한다. 언론 보도대로 미국의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이 한국을 동시에 방문해서 한국의 관계 장관들과 이런 류의 회담을 가진 전례가 없었다. 그만큼 파격적이라는 얘기다.
미국의 국무부와 국방부는 미국 외교정책을 결정하고 집행하는 두 축이다. 물론 국무부가 행정부 내 최고 선임부서이며, 외교정책에 관한 궁극적인 책임과 정책관할권을 가진다. 그러나 예산과 인력 차원에서 미 국무부가 가진 정책 자원은 국방부의 그것에 비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국무부 예산은 국방부 예산의 10분의 1, 인적 자원은 100분의 1 수준이다. 국방부는 4천200억달러 규모의 예산과 300만 명 이상의 인적 자원을 보유한 거대한 기구다.
국무부와 국방부가 '안보'와 '국익'이라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지만, 이들 목표에 대한 두 부서의 정책 기조는 상이하다. 일반적으로 국무부가 가진 엘리트주의 문화는 매우 신중하고 외교적이며 위험 회피적인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반면 국방부는 상대적으로 보다 직접적이고 군사적이며 위험을 감수하는 정책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어쩌면 두 부서의 이렇게 상이한 정책 기조는 미국 외교정책이 나름의 균형을 찾아나갈 수 있게 하는 제도적인 장치일 수 있다. 사실 미국 외교정책은 자신들이 가진 이상과 가치를 실현하려는 '십자군적인 열정'과 국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냉철한 현실주의'의 조화에 기초해 있고 국무부와 국방부는 이러한 모순적(oxymoron) 경향의 한 축을 각각 대표한다. 라몬트 콜루치의 『십자군적 현실주의』는 미국 외교정책이 갖는 모순적 혹은 이중적 경향을 날카롭게 풀어내고 그것들의 사상적 기원을 설득력 있게 제시한다. 다소 이론적이어서 휴가철 바닷가에서 읽을 만한 책은 아니지만 미국 외교정책의 핵심을 이해하고자 하는 독자들이라면 '정독'할 만하다.
류재성<계명대 미국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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