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푸르륵 참 / 김기상

살구나무의 이웃은 죽나무다

잎을 벗은 나무들은 제 앙상한 가지를 새들에게 준다

가끔 바람이 들러 가지만 달갑지 않다

더 이상 떨구어 줄 것이 없다는 말이다

죽나무는 참자를 붙여 참죽나무라고 불러주면 아주 좋아한다

참말로 죽도록 좋아해서 참죽나무다

살구나무도 참자를 빼면 곧장 개자가 들어붙기 일쑤라

꼭 참자를 붙여주길 바란다

이웃하고 사는 나무들의 속내를 가장 잘 아는 것이 참새다

하루 종일 부지런히 나무와 나무 사이를 넘나들며

푸르륵 참 푸르륵 참

나무마다 참자를 붙여주고 다닌다

가까운 이웃에 시인도 하나 있는데

녀석들 번번이 건너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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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죽도록 좋아해서" 참죽나무라니, '참말로 새'인 참새와의 인연이 끈끈할 수밖에 없겠다. 바람이 들러 가는 걸 달가워하지 않는 이유도 참 그럴 듯한데, "더 이상 떨구어 줄 것이 없다"는 능청이 결코 밉지 않다. 가죽나무가 있어 죽나무는 그냥 죽나무가 아니라, 참죽나무인 것. 살구나무도 개살구나무 탓에 참자를 붙여주길 바란다니, 그 심정 이해가 되고도 남는다.

통통, 튀는 재기(才氣)가 번거로운 수사(修辭)를 배제한 소박한 시 한편에 가득하다. 압권은 '푸르륵 참 푸르륵 참'이라는 정겨운 흉내말과, "가까운 이웃에 시인도 하나 있는데/ 녀석들 번번이 건너뛴다"는 결미의 위트에 있다. 생태시라고 해서 반드시 공해나 오염에 찌든 피해망상의 선입관에 빠질 필요는 없다. 이렇듯 건강하고 긴결(緊結)한 이웃 간의 '상호관계'를 노래하는 시도 참신한 생태시의 전범이 될 만하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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