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필귀정] 해프닝과 차등원칙

한나라당 차명진 의원이 참여연대의 '릴레이 최저생계비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한 뒤 자신의 홈페이지에 남긴 후기가 화제다. 차 의원은 식비 6천300원으로 쪽방에서 1박 2일 동안 생활하면서 '황제의 식사가 부럽지 않게' 먹고, 지냈다는 후기를 썼다. 3끼 식사비로 3천710원, 야식비로 970원을 쓰고, 남은 돈으로는 1천 원을 기부하고, 600원으로 신문도 사는 문화생활까지 했다고 자랑했다.

물론 이런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건강하고, 일일체험과 관련한 정보를 조사했으며 발품을 많이 팔았다는 나름대로 이유도 붙였다. 그는 최저생계비로 생활하기의 답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국가 재정 문제도 있으니 돈 몇 푼 올리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들에게 건강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좋은 정보를 주는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이 더 낫다고 했다.

이를 읽은 많은 네티즌은 흥분했다. 대개 비난 조다. 그렇게 한 달만 살아라, 평생 그렇게만 먹고살아라는 정도의 비아냥은 점잖은 편이다. 민주노총은 '개드립'(버라이어티 쇼 시청자에게 쓴웃음을 짓게 하는 애드립이라는 뜻)이라는 원색적인 단어까지 동원하며 비난했다. 결국 차 의원은 문제가 된 후기를 삭제한 뒤 새 후기를 올리고 공개 사과를 했다.

그의 체험담은 솔직했을지 모른다.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고, 열심히 사진을 찍은 것을 보면 체험담을 홈페이지에 올리겠다는 생각을 사전에 했을 것이다. 그러나 경솔했다. 누군가의 절실한 생존 문제를 버라이어티 쇼로 바꿔 버린 것이다. 세 끼에 3천710원의 식비로 황제가 부럽잖은 식사를 했다거나, 최저생계비를 돈 몇 푼이라고 표현한 말이 그렇다. 참여연대가 현직 국회의원을 이 체험에 참여시킨 것은 '고통스럽다. 어떻게 이 돈으로 하루를 살아가는지 모르겠다. 최저생계비를 올리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의 후기를 남겨주기를 바란 것일 터이다. 연출자의 뜻을 무시하고 무리한 애드립을 하다가 시청자의 맹비난으로 자숙에 들어간 꼴이 됐다.

그가 혼동한 것은 체험과 생활의 차이다. 그는 모든 업무에서 벗어나 하루쯤 쉰다는 뜻으로 참여했다. 출발부터 잘못한 셈이다. 그러니 산꼭대기의 경관이 좋아보이고, 기초생활수급자의 불편함을 보고 전화로 서울시장에게 시정을 부탁했을 터이다. 이 정도의 체험은 식은 죽 먹기다. 극기 훈련이나 굶기 체험이 유행하는 세상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이것이 생활이라면 완전히 다른 문제다. 하루를 버티면 끝나는 체험이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최저생계비만으로 살아가야 하는 이웃이 많다는 것을 '쇼'라는 흥겨움 속에서 잊어버린 데 그의 잘못이 있다.

한 시대를 지배했고, 지금도 유효한 것 가운데 존 롤스의 '차등원칙'이라는 것이 있다.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는 사람에게 이익이 돌아가는 경우에만 사회적'경제적 불평등을 인정하자는 것이다. 정당한 노력으로 돈을 벌어서 낸 나의 세금을 사회적 총생산에 기여하지 않는 이들을 위해 사용하는 것을 동의하는 것은 이들이 사회에서 가장 약자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은 공리주의자, 자유주의자, 평등주의자 모두로부터 공격을 받았지만 아직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대부분 국가의 복지 정책이 이 차등원칙에 이론적 뿌리를 두고 있다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이번 일은 단순한 해프닝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주인공이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 보면 뒷맛이 씁쓸하다. 사회적 최약자의 생활에 대한 희화화와 치기를 엿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등 떠밀려 사과를 한들 이러한 시각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이 해프닝이 한낱 우스개나 국회의원 개인에 대한 조롱과 비난거리가 되지 않으려면 차등원칙의 뜻을 한 번 더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환경이나 능력 등 인간 조건을 감안하지 않는 이론상의 평등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차등원칙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 복지사회, 복지국가의 이념은 이러한 차등원칙을 충실히 적용하고, 차등을 줄이는 데 최대한의 노력을 하는 데 있다고 믿는다.

鄭知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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