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활의 고향의 맛] 민물 새우

붕어매운탕 대신 새우튀김…낚시터의 별미

낚시터에 도착하니 날씨가 음산했다. 비까지 뿌려 고기가 잡힐 것 같지 않았다. 시험 삼아 두 칸 반짜리 낚싯대 한 대만 던져두었다. 예상대로 입질은 없었다. 천막을 치고 저녁 준비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었다. 붕어를 잡아 매운탕을 끓일 계획은 빗나가고 말았다.

민물낚시든 바다낚시든 승률은 통상 20% 미만이다. 먹을거리 준비가 부실해야 전력투구하여 '그날 끓여 먹을 고기를 잡을 수 있다'는 엉터리 생각이 항상 계획을 그르치곤 했다. 그날도 그랬다. 매운탕에 넣을 푸성귀와 양념뿐 고기가 잡히지 않았을 때의 대비책은 전혀 없었다.

##입질은 없고 통발 속에는 새우가…

철수를 결정했다. 낚싯대를 걷고 밤낚시에 대비하여 물속에 넣어둔 통발을 건져올렸다. 이게 웬일인가. 통발 속에는 눈알이 초롱초롱한 새우가 반 사발쯤 들어 있었다. 붕어는 잡히지 않고 새우만 가득 잡혔으니 배탈 난 주연 배우가 병원으로 실려가고 조연이 주연으로 뒤바뀐 연극판이나 다름없었다.

하기야 인간 세상에도 상하좌우가 바뀌어 새옹지마니 주객전도니 하는 사자성어를 만들어낸 지가 오래되었음을 상기한다면 그게 그렇게 노여워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다시 철수를 취소했다. 옆에서 투덜거리던 친구를 읍내 가게로 내려보냈다. 새우튀김이 순간적으로 떠올라 튀김가루와 식용유, 감자, 홍당무 그리고 소금을 사오라고 일렀다. 낚시터의 동쪽을 가로막고 있는 동산에 달이 떠오를 때까지 새우를 잡아 그걸로 튀김요리를 즐길 작정이었다.

나는 원래 낚시보다 캠핑을 더 좋아한다. 밤낚시를 가긴 해도 밤을 새워 고기를 낚진 않는다. 월척 붕어의 꿈도 살림망 가득 채우는 수확도 안중에 없다. 천막 앞에 맨땅 밥상을 펼치고 술 한잔 곁들이면 이보다 더 좋을 수가 없다. 고산 윤선도 선생의 말씀대로 '동산에 달 오르면 긔 더욱 반갑지만' 달이 없어도 가스 랜턴에 불 밝히면 낚시터의 운치는 이 등불 하나로 충분히 갚음하고도 남는다. 거기에다 물안개까지 잔잔하게 피어오르면 무얼 더 바라랴.

##갓 튀긴 감자'홍당무'새우 조화 절묘

감자와 홍당무는 채 썰어 새우와 튀김가루에 버무린다. 화력 좋은 스베아(svea) 버너에 올려진 튀김기름의 온도가 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손끝으로 튀김 재료를 적당하게 집어 코펠에 살짝 넣는다. 시장을 지나다니며 어깨너머로 봐둔 튀김집 할머니의 손놀림이 큰 도움이 된다.

새우가 빨갛게 익었다 싶으면 건져내 식혔다가 다시 한 번 더 튀겨야 바싹거리는 맛이 좋아진다. 감자와 홍당무 그리고 열기에 익은 새우가 앙상블을 이뤄 색깔도 그럴싸한데다 먹어보면 맛이 일품이다. 눈대중으로 뿌린 소금이 알맞게 간이 되어 한결 맛을 낸다. 주위엔 아무도 없다. 이렇게 멋스런 달빛 파티를 봐 주는 사람이 없어 그게 서운할 따름이다.

##마늘종'풋고추 곁들여 볶으면 일급 안주

새우젓 중에서도 육젓, 추젓을 제치고 민물새우로 담근 토하(土蝦)젓이 명품이듯 볶음 요리도 민물새우 볶음이 바다새우보다 훨씬 더 맛이 있다. 맛이 깔끔하면서 담백하기 때문이다. 대구 근교에는 자인장(3, 8일)과 동곡장(1, 6일)에 가면 한 사발에 5천원 정도에 살 수 있고 전라도 무안장(5, 10일)에서는 이 가격에 한 됫박을 살 수 있다. 민물새우는 마늘종과 풋고추를 적당한 크기로 잘라 넣고 납작하게 썬 마늘편을 곁들이면 훌륭한 반찬 겸 일급 안주가 된다.

나는 작은 소원 하나를 가슴에 품고 산다. 이 도시에서 그리 멀지 않은 시골에 고향집 같은 촌집 한 채를 마련하는 것이다. 해거름에 대나무 낚싯대와 통발 하나를 둘러메고 가까운 연못으로 나가면 붕어와 새우가 한 주먹쯤 안줏거리로 잡히는 그런 곳에서 살고 싶다. 그곳에서 가끔 석양주나 한잔씩 마시다가 조용히 잠들고 싶다.

수필가 9hwa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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