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일과 육아를 같이 하는 주부 김주연(34·대구 달서구 송현동) 씨는 일주일에 한 번 장을 본다. 평일에는 몸이 피곤한데다 다섯 살짜리 아이와 씨름하다 보니 장 볼 겨를이 없어 휴일이 돼야 마트로 향한다. 김 씨는 "일주일치를 사기 때문에 다소 넉넉한 양을 산다. 혹시 부족하면 음식 만들기가 번거로워지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사온 음식재료는 곧바로 냉장고로 향하는데, 미처 해 먹지 못한 재료들은 1, 2주일씩 넣어 두기도 한다.
김 씨처럼 냉장고를 맹신하는 주부들이 많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냉장고를 너무 믿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특히 요즘 같은 무더위에는 냉장고나 냉동실 보관이 능사가 아니다.
◆냉장고에도 세균 번식해요
일반적인 생각과는 달리 냉장고에서도 세균 번식이 충분히 가능하다. 보통 하루 이내에는 냉장고에 보관해도 큰 이상이 없지만 하루만 지나면 세균 번식이 급격히 증가한다. 대구지방식품의약품안전청 식품안전관리과 김은경 주무관은 "냉장고 온도가 기준보다 높거나 외부에서 세균이 한 마리라도 침입하면 하루만 지나도 세균이 60만 마리까지 증식할 수 있다. 시간과 온도만 맞으면 냉장고도 세균들의 무대다"라고 말했다. 영남대 식품영양학과 방우석 교수는 "냉장이나 냉동은 유해 미생물의 활동을 정지시키거나 저하시킬 뿐, 이들의 활동을 막지는 못한다"고 했다.
이는 조사에서도 나타난다. 식품의약품안전청과 소비자시민모임이 지난해 전국 2천 명의 주부를 대상으로 냉장고 사용 실태를 조사한 결과 63.6%가 냉장고에 식품을 보관하면 안전할 것이라고 믿으면서도 위생관리는 제대로 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식약청이 지난해 50가구를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43가구(86%)에서 최고 6만8천 마리(g당)의 세균이 발견됐고 냉장고에 보관 중인 햄이나 두부, 소시지 등에서 식중독을 일으키는 황색포도상구균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냉장고도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 일반적으로 냉장온도는 0~5℃, 냉동온도는 영하 18도를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냉장고 온도는 처음에 맞춰 놓으면 방치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한 번씩 온도계로 내부 온도를 체크하는 것이 좋다. 또 보관량은 냉장고 용량의 70%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정기적인 내부 청소도 중요하다.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보관 식품들을 다 꺼내고 청소한다. 냉동실의 성에를 제거하고 냉장실은 세척제로 닦은 뒤 마른 수건으로 닦아주면 된다. 월 1회 정도 주기적으로 알코올 등으로 소독해주는 것도 좋다.
최근 많이 사용하는 김치냉장고도 마찬가지. 김치냉장고에 김치뿐 아니라 다양한 식품을 보관하는 경우가 많은데 역시 관리가 되지 않아 오염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일반 냉장고보다 관리가 취약해 더 위험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김치냉장고는 청소가 일반냉장고에 비해 훨씬 수월하기 때문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위생적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뜨거운 음식은 식혀서 넣으세요
냉장이나 냉동식품은 계산 바로 직전, 즉 가장 나중에 구입하고 집에 오자마자 냉장 또는 냉동 보관하는 것이 좋다. 식품 포장에는 보관방법이 기재돼 있는데 이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유통기간은 보관기준에 맞춰 설정된 기간이기 때문에 이 기준을 맞추지 않으면 유통기간 이전에 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포장용지나 박스는 유통과정에서 세균에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냉장고에 넣기 전에 제거하는 것이 좋다.
조리한 음식은 냉장고에 넣기 전에 충분히 식히는 것이 우선이다. 김 주무관은 "뜨거운 음식이 냉장고에 바로 들어가면 냉장고 온도가 떨어져 세균 번식을 촉진할 수 있는데다 갑작스런 온도차로 응결수가 생겨 냉장고 내벽 등에 묻어 있는 세균과 합쳐져 다른 식품을 오염시킬 수 있다"고 했다. 충분히 식힌 음식은 반드시 덮개를 덮어 냉장고에 보관해야 한다. 먹다 남은 조리 음식은 침이나 수저 등에 의해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재가열을 한 다음 식혀서 냉장고에 넣는 것이 바람직하다.
교차오염 방지도 염두에 둬야 한다. 방 교수는 "생선이나 육류 등 날음식은 오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냉장고 하단에 두는 것이 좋고 익힌 음식이나 가공식품, 채소 등 오염도가 낮은 것들은 냉장고 상단에 올려놓아야 오염 전파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냉동 보관도 주의해야 한다. 냉동실에 넣어두면 무조건 오래 보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냉동 보관은 세균 증식을 막을 수 있지만 신선도가 급격히 떨어진다.(표 참조)
◆랩이나 밀폐용기 이용하세요
냉장고에 식품을 넣을 때 식품 종류나 구입일, 유통기한 등을 메모해 냉장고에 붙여놓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또 위생적인 랩이나 밀폐용기 등을 적극 활용하는 것도 생활의 지혜다. 냉동된 제품을 상온에 두거나 흐르는 물로 녹이면 세균이 증식할 수 있으므로 전자레인지를 이용해 급속 해동하는 것이 좋다.
육류는 쉽게 상하기 때문에 외부 공기와 접촉하지 않도록 랩에 싸서 밀폐 용기나 지퍼백에 넣어 냉장보관하는 것이 좋다. 냉동할 때도 1회분씩 나누어 얇게 펴서 랩으로 싼 뒤 지퍼백에 넣어 보관한다. 혹시 변색하거나 이상한 냄새가 나면 곧바로 버려야 한다. 어패류는 상하기 쉬운 내장을 제거하고 물기를 완전히 없앤 뒤 랩이나 포일에 싸서 온도가 낮은 냉장칸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생물은 냉동했던 것을 해동해 파는 경우가 많으므로 다시 냉동하면 맛이 크게 떨어진다. 조개는 소금물에 씻은 후 물기를 제거하고 지퍼백에 넣어 보관한다.
채소는 채소칸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며 흙만 털고 씻지 않은 채 랩에 싸서 보관해야 더 오래 먹을 수 있다. 잎채소류 이외의 채소는 냉동 보관할 경우 밀폐용기를 이용한다. 양파나 감자 등은 냉장고에 넣지 않고 햇빛이 비치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해야 한다. 김 주무관은 "흙이 붙어 있는 파도 신문지에 싸서 서늘하고 그늘진 곳에 보관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다. 토마토나 자두, 사과 등은 비닐봉투에 넣어 보관하는 것이 좋고 열대 과일인 바나나나 파인애플, 멜론 등은 실온에서 보관해야 한다. 방 교수는 "특히 바나나는 냉장 보관했을 때 냉해를 입기 쉬운 과일이므로 반드시 서늘한 곳에 상온 보관해야 한다"고 했다. 과일은 씻지 않은 채 보관했다가 먹을 때 씻는 것이 좋다. 유제품은 일단 개봉하면 남기지 말고 다 먹는 게 좋고 남는 것은 뚜껑을 꼭 덮어 보관해야 한다. 식초나 간장, 식용유, 참기름 등 조미료는 직사광선을 피해 상온에서 보관해야 하고 잼은 개봉 후 냉장보관한다.
◆약·화장품, 건조하고 직사광선 없는 서늘한 곳 "좋아요"
여름철에는 식품 보관 외에도 신경 써야 할 것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약과 화장품이다. 식품만큼은 아니지만 온도나 습도 등에 상당히 민감하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우선 약 보관법부터 보자. 보통 여름철에는 냉장고에 약을 넣어두면 오래 보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다. 냉장고에 약을 보관하면 습기가 차거나 침전물이 생겨 약 성분이 변질하기 쉽다. 특히 여름철엔 냉장고 안과 밖의 온도차가 심해 변색이나 변질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약은 특별히 저온 보관이 필요한 약을 제외하고는 상온에 보관하는 것이 원칙이다. 습기가 적고 직사광선이 없는 서늘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약에도 유통기한이 있으므로 이를 엄격히 지키고, 2년이 지난 약은 과감히 버려야 한다.
화장품도 마찬가지다. 어둡고 서늘하며 건조한 곳에 보관하는 것이 좋다. 빛과 열이 화장품에 들어있는 방부제 성분을 쉽게 파괴해 버리거나 방부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없도록 만들어 유통기한보다 더 빨리 변질시킬 수 있다. 보관온도가 일정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온도차가 너무 크면 화장품의 성분이 분리돼 침전물이 생기고 계면활성제로 섞여 있던 물과 기름이 분리돼 사용할 수 없게 된다. 특히 로션이나 크림 등 보습 제품들은 온도가 일정치 않으면 제형이 쉽게 분리될 수 있으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화장품 보관의 가장 적정한 온도는 15℃ 내외다.
전창훈기자 apolonj@msnet.co.kr
사진'안상호 편집위원 shah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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