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다. 살이 익고 숨이 막힐 것 같은 더위다. 회색의 도심은 줄지어 선 가로수로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제은빌딩엔 무더위를 달래줄 싱그러운 푸르름이 있다.
5층 건물 맨 꼭대기 베란다 30여 평에 50여 종의 각종 식물이 싱그러운 자태로 손님을 맞는다. 15년 가까이 옥상 정원을 가꾸어 온 이곳 주인 김영종(79) 할머니는 사계절 내내 꽃과 식물들을 친구하며 살아서인지 20년은 더 젊어 보인다.
거실에 앉아 선풍기만 틀어 놓고 앉으면 아름다운 휴양지에 온 듯하다.
김 할머니가 신명여고 시절 학교주변에 있던 선교사 댁에 예쁜 꽃들이 많아 구경을 즐겨했을 때부터 간직한 꿈을 이루어낸 것이다.
1년 내내 꽃을 피우며 번식력이 강한 베고니아를 가장 좋아한다는 김 할머니는 "매일 아침 물주기부터 마른 잎 뜯어주기 등 꽃을 돌보느라 잠시도 앉아 있을 틈이 없을 정도로 이 일이 즐겁다"며 "꽃과 이야기를 하니 때론 친구 같고, 때론 자식 같아 어디 멀리 여행이라도 갈라치면 걱정이 되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가랑코에, 사랑초, 일일초, 산호초, 소나무, 귤나무, 포도나무, 스킨답스 등 들어도 금방 잊어버리는 생소한 식물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어느 것을 물어봐도 이름을 줄줄 외고 있다. 식물들을 더 잘 가꾸기 위해 대학교에서 개설한 강좌까지 들을 정도로 정성을 기울이고 가꾸어 왔음의 반증인 듯하다. 자식 같고 친구 같은 식물들 이름을 어떻게 잊을 수가 있을까, 금새 고개가 끄덕여진다.
또 다른 공간엔 야채를 심어 수확의 즐거움을 맛보고 분수대까지 만들어 물소리를 들으니 이것이 바로 도심 속 전원생활이 아닐까.
김 할머니는 예쁜 꽃을 혼자만 보는 것이 아니라며 친구들 모임 때 작은 화분을 하나씩 건네주기도 한다. 꽃을 사랑하는 고운 마음으로 '와이즈맨 알파클럽'의 일원이 돼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사랑하면 늙지 않는다고 했던가. 꽃을 사랑하고 가꾸며 봉사하는 삶을 살다보니 김 할머니의 몸과 마음의 노화시계가 멈춰버린 것은 아닐까.
최유선 시민기자 yousun@hnamail.net
멘토:김대호 기자 dhkim@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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