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의 수도(首都). 지엠과 포드, 클라이슬러 등 한동안 전세계 자동차 시장을 평정했던 '빅 3'의 본사가 있는 곳. 공항을 빠져나와 디트로이트 도심으로 진입하자 70층짜리 지엠 본사가 있는 르네상스 센터를 배경으로 줄지어선 고층 빌딩들이 청명한 하늘을 배경으로 한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디트로이트 시내로 들어서면 '시한부 삶'을 살아가는 디트로이트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난다. 실업률과 범죄율 미국 1위,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런 도시 1위. 한때 자동차의 전설로 통했던 디트로이트, 그러나 2010년 8월 디트로이트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겨우 삶을 연명하는 도시였다.
◆도심은 철거 중
지엠(General Motors) 본사가 있는 르네상스 센터는 디트로이트의 자존심이다.
이리호를 배경으로 캐나다와 국경을 접한 곳에 자리잡은 지엠 본사는 벤치마킹을 위해 전세계에서 찾아든 자동차 관련 종사자들과 살아있는 자동차의 신화를 보기 위해 몰려든 관광객으로 북적이던 곳 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지엠이 파산보호 신청을 하고 대다수 공장이 폐업 또는 부분 가동에 들어가면서 한적한 빌딩으로 변해 있었다. 본관 1층 자동차 전시장은 평일인데도 리뉴얼을 이유로 문을 닫은 상태였고 항상 북적이던 현관 로비는 20~30여 명의 관광객만이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이리호 앞에 우뚝 서 있는 지엠 빌딩은 '활기'만 사라졌을 뿐 괜찮은 자태를 뽐내고 있는 편이다.
지엠 본사에서 불과 200~300m 떨어진 도심 대로인 위싱턴 블리워드.
2~3분마다 경찰차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고 길거리에는 웃옷을 벋은 반나의 흑인들만 주위를 살피고 있었다. 몰락한 디트로이트의 현실이 펼쳐지는 곳이다.
멀리서는 멀쩡했던 고층 건물들이 가까이 다가서자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20~30층이 넘는 고층 빌딩 대부분의 유리창이 깨져 있었고 입구는 노숙인들의 출입을 막기 위해 펜스로 둘러쌓여 있었다. 또 빌딩 숲 사이 곳곳에는 이미 철거된 건물의 빈터를 잡초들이 채우고 있었다.
디트리이트는 현재 도심 건물의 30% 정도가 이러한 상태로 방치돼 있다.
점심 시간이 되자 폐허로 변한 고층 빌딩 숲 사이로 시청에서 운영하는 무료급식차가 나타났고 흑인들이 줄지어 음식을 받아들고 흩어졌다. 도심 관리를 맡고 있는 디트로이트 시청 직원인 라카씨는 "이미 20년 전부터 도심 건물들이 비기 시작했으며 건물 유지 비용이 너무 들어 방치하고 있다"고 했다.
또 "밤 시간은 물론 낮 시간도 강도 사건이 많아 도심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치안 상태가 몹시 불안하다"고 덧붙였다.
2008년 기준으로 디트로이트의 시민 1만명당 강력 사건은 122건으로 미국내 범죄율 1위를 기록했으며 포브스는 미국내 가장 위험한 도시로 세계적으로는 바그다드에 이어 2번째 위험한 도시로 디트로이트를 꼽았다.
세계 최대의 여행가이드북 회사인 론리 프래닛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런 1위 도시로 디트로이트를 선정했다. 실제 취재진의 대낮 도심 사진 촬영도 기마 경찰의 도움을 받으며 진행할 정도로 디트로이트는 불안했다.
◆몰락의 원인은
디트로이트 몰락은 지엠과 포드, 클라이슬러의 위기와 맥을 같이한다.
미국의 자동차 생산량은 2004년 1천202만여 대에서 2007년 1천81만대, 지난해에는 575만대로 불과 5년사이 절반 수준으로 급감했다. 디트로이트가 미국내 완성차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승용차의 30%, 버스·트럭의 23%며 자동차 관련 R&D 회사의 80%가 디트로이트에 몰려 있다. 또 미국내 자동차 부품업체 상위 150개 중 85%가 디트로이트를 중심으로 한 미시건주에 소재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에 의존하며 100년간 도시 성장을 추구해온 디트로이트가 미 자동차 산업 불황에 직격탄을 맞는 것 당연한 일이다.
1999년 130만명을 넘었던 자동차 업체의 일자리는 지난해 65만명 수준으로 떨어졌고 지엠의 미국내 직원수도 호황기인 1979년 85만명에서 이제는 20여만명으로 감소했다, 미 노동부 통계에 따르면 2000년 3.7%였던 디트로이트의 실업률은 지난 5월 기준 15%를 기록하고 있다, 10년전 9만명 수준이던 실업자는 30만명을 넘고 있다.
디트로이트의 몰락은 이미 30여년 전부터 예고된 재앙이었다.
1967년 흑인 폭동으로 백인들이 도심을 떠나기 시작했고 1973년 석유 파동과 일제차의 등장으로 1980년대 들어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은 생산량의 40%가 줄어드는 어려움을 겪었다. 또 2000년 이후에는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와 금융위기로 미국내 자동차 수요가 급감하면서 클라이슬러에 이어 지엠이 파산신청을 하는 사태까지 이어졌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경기 회복으로 자동차 수요가 살아나도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산업은 '경쟁력 부족'으로 예전의 명성을 되찾기가 쉽지 않다는 점.
지엠에 근무하다 퇴직한 존 엔렌 씨는 "자동차 시장이 휘발유를 적게 소비하는 하이브리드 시장으로 재편되고 있지만 지엠이나 포드 모두 에너지 고소비 자동차 개발만 고수해 왔다"며 "뒤늦게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에 뛰어들고 있지만 예전의 시장 점유율을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디트로이트에 있는 완성차 공장은 11개. 하지만 2개만 정상 조업을 하고 있을 뿐 나머지는 문을 닫거나 부분 조업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올들어 미국 자동차 시장이 조금씩 회복되고 있지만 일본과 독일, 한국차에 추월을 당했고 미국내 자동차 생산기지도 앨리마바와 조지아 등 남부로 이동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근거지란 자존심마저 흔들리고 있다.
한때 200만명의 인구를 기록하며 미국 4대 도시라는 명성을 얻었지만 불과 20~30년만에 인구가 90만명으로 줄어든 디트로이트. 미래를 준비하지 못한 도시의 '몰락'이 한순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곳이었다.
이재협기자 ljh2000@msnet.co.kr
사진. 김태형기자 thkim21@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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