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와 이야기를 하다 보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지?' 나쁜 의미가 아니다. 그와의 짧은 대화 속에서 그의 인생, 그 속의 생각과 가치관, 실천하는 행동 하나하나가 귀에 들어와 박혔다. 원칙으로 무장하고 뚝심으로 밀어붙이는, 그야말로 남자라는 느낌.
"우리가 알고 있는 유익(有益)하다의 유익이 맞습니다. 그렇게 살자, 앞으로도 유익하게 살자." 종합건설회사인 ㈜유익이엔씨 박광재 대표이사의 첫마디였다.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1982년 당시 정우개발(현 벽산건설의 전신)에 첫발을 내디뎠다. 건설현장의 밑바닥에서부터 차곡차곡 일을 배우고 익혔다. 9년을 그곳에서 일했다. 건설현장에서 알게 된 지인의 소개로 직장을 옮겼는데 그곳에서 2년 일하고 월급쟁이 생활을 접었다. 마지막 월급이 70만2천원.
"어느날 밤, 사장님이 부르더군요. 우리가 1억원 줄 공사인데 차 떼고 포 떼고 좀 해서 적게 주도록 노력 좀 해야지 왜 그러지 않았냐면서 타박을 합디다." 사업 수주를 한 건설사가 돈을 받고 하청업체에는 덜 주는 관행이 허다한 당시였다.
"제가 그랬지요. 사장님, 저도 처자식이 있는 사람이고, 회사가 잘 돼야 저도 잘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만 그건 사기 아닙니까?" 그는 그 길로 사물함을 정리하고 나왔다. 그리고 10년이 조금 넘는 현장경험 때 쌓은 인맥으로 전문건설회사(법인)를 설립하게 된다.
㈜유익이엔씨는 그렇게 시작했다. 경기도 고양에 본사가 있는데 관공서 공사를 주로 수주한다. IMF로 건설업계가 개방됐고 우후죽순 생기면서 타격을 입을 법했지만 ㈜유익은 알짜배기로 더욱 성장했다. 박 대표의 표현대로라면 "일을 주면 확실한 회사다. 그걸로 버티고 있는 것"이란다. 매출은 해마다 다르지만 200억원가량일 때 가장 남는 게 많았다. 그해에는 자신도 신이 나고 직원들도 춤을 춘단다.
박 대표는 "일이 너무 많으면 저도 직원들도 싫어합니다. 남는 것은 없는데 바쁘기만 하고. 무엇보다 자기 시간이 없다는 것이죠." 그가 직원을 이렇게 챙기는 이유가 있다. 35명 직원이 모두 10년 이상, 많게는 15년 이상 동고동락한 그야말로 가족이기 때문이다.
"도장이고, 통장이고 모두 우리 직원에게 맡겼습니다. 결재서류가 올라와야 '수금을 했구나' 알 수 있을 정도지요." 금전사고는 없었냐고 물으니 "10년 전인가 현장감독이 5천200만원을 들고 튄 사건 외에는 없다"고 웃었다. 마음이 아팠겠다고 하니 "내가 그 정도 돈을 들고 튈 정도밖에 되지 못했구나 하며 내 탓을 했다"며 또 웃었다.
그만의 권한인 직원 채용도 직원들에게 모두 맡겼다. 이유인즉 "자네들과 함께 일할 사람이니 자네들이 직접 뽑도록 하게"라는 취지란다. 직원들이 "이 사람과 일하고 싶다"고 하면 박 대표는 사무실로 신규 채용된 사람을 불러 커피 한 잔을 하며 이렇게 부탁한단다. "약속 시간을 꼭 지켜라. 거짓말 하지 마라. 뒤에서 욕하지 마라." 그게 끝이다. 그는 불만이 있는 직원은 무기명으로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창구를 열어놨다. 몰랐던 잘못을 알게 되면 바꾸고, 좋은 의견에는 상을 준다. 가족처럼 똘똘 뭉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들어 놓은 셈이다.
최근 대구를 기반으로 한 건설사 ㈜청구가 최종 부도된 얘기로 흘렀다. 박 대표는 "건설사는 매출이 얼마라고 판단해선 안 된다.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식으로는 절대 발전하지 못한다"며 "돈이 문제가 아니라 모두가 얼마나 즐겁게 알짜로 일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한 회사의 장(長)인데 요즘 젊은이들이 어떠냐고 물어봤다. 그는 "약한 정도가 아니지…. 나약하지"라며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열심히 할 사람이다, 좀 있다 나갈 사람이다라는 건 몇 마디만 물어보면 알 수 있다. 머리는 똑똑한데 행동이 똑똑하지 못한 젊은이들, 말은 많은데 성실하지 못한 젊은이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고 했다. 검게 그을린 그의 얼굴과 작은 호박만한 팔뚝이 더 짙고 크게 보였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돈을 얼마나 많이 벌었나보다 지금 누구와 함께 있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 아니겠냐고. 소주 한잔에 취할 수도 있고 양주 한 병에 취할 수도 있지만 전 소주 한잔 나눠 마시며 함께 취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더 큰 행복감을 느껴요."
요즘 그의 화두는 '봉사'다. 이제 유익한 일을 해야 할 때란다. 최근 직원들과 자신이 십시일반으로 모은 한푼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함께 고민하고 있단다.
박 대표이사는 1958년 김천 출생으로 성의상업고등학교, 영남전문대 토목과를 졸업했다.
서상현기자 subo801@msnet.co.kr
댓글 많은 뉴스
국힘 김상욱 "尹 탄핵 기각되면 죽을 때까지 단식"
[단독] 경주에 근무했던 일부 기관장들 경주신라CC에서 부킹·그린피 '특혜 라운딩'
민주 "이재명 암살 계획 제보…신변보호 요청 검토"
최재해 감사원장 탄핵소추 전원일치 기각…즉시 업무 복귀
이재명, '선거법 2심' 재판부에 또 위헌법률심판 제청 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