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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떻습니까]40년 얼음장사 외길 김재열씨

김재열씨가 커다란 각얼음을 톱느로 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김재열씨가 커다란 각얼음을 톱느로 썰고 있다. 성일권기자 sungig@msnet.co.kr

"30, 40년 전만 해도 얼음은 없어서 못 팔 지경이었지요. 그때는 유난히 여름이 더웠던 것 같아요. 얼음덩이를 맬 노끈이 모자라 볏짚을 썼고 이마저 없을 땐 신문지에 싸서 들고 다녔죠."

대구시 동구 신천1·2동 주택가. 33℃를 오르내리는 무더위 속에서 막 배달을 마치고 돌아온 대동얼음 김재열(58) 사장은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가쁜 숨을 내쉬었다. 선친과 함께 얼음을 팔아온 세월이 어언 40년. 몸에 밴 부지런함과 정직으로 얼음 장사를 해 온 김 사장은 이제 사양길로 접어든 가게를 천직인 양 잇고 있다.

"당연히 1년 중 7, 8월이 가장 바쁩니다. 10㎏짜리 포대얼음(비식용·냉장용) 한 자루에 1천원 정도 남지만 단골이 부르면 달려가야지요."

하루 얼음 거래량은 300~400㎏. 그나마 하루 배달건수가 지난해보다는 30%가 줄었다. 가정과 가게마다 성능 좋은 대형 냉장고, 각종 제빙기, 냉각기가 비치되고 있기 때문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휴가철이면 얼음집을 찾아 아이스박스용 얼음을 사갔지만 지금은 웬만한 마트나 슈퍼 등지에서 모두 얼음을 판매하기대문에 찾아오는 손님이 거의 없다시피하다.

"해마다 손님이 줄고 있어요. 갈수록 가정용·영업용 냉장고는 더 잘 나올 것 아니에요. 그럼 이 일도 점점 하기 힘들테지만 하는 데까지 해봐야죠."

최근 들어 고객은 주로 칵테일용 얼음이 필요한 커피전문점과 제과점 50여 곳이 고작이다. 포대얼음과 칵테일용 얼음이 전체 물량의 80%쯤 된다. 이때문에 한여름 잠시나마 시원함을 주던 커다란 통얼음을 큰 톱으로 써는 모습은 좀체 구경하기 힘들다. 어쩌다 주문이 오면 요즘은 전기톱을 이용, 빠르게 적당한 크기로 잘라낸다.

"30년 전엔 냉동회사 앞에 건달들이 진을 칠 정도로 장사가 잘 됐죠. 그만큼 얼음장사가 이익이 남는 일이었죠. 힘들여 거래처를 뚫어 놓으면 어느새 건달들이 거래처를 낚아채기 일쑤였습니다."

물량이 달려 속이 빈 불량얼음을 공급받기도 했고 48시간 얼려야 하는 얼음을 24시간 단축냉동시켜 희뿌연 얼음을 받았지만 김 사장은 그래도 성실과 노력으로 그들과 큰 마찰없이 얼음을 팔 수 있었다고 회상했다.

요즘도 김 사장은 새벽이든 밤늦게이든 주문전화가 오면 슬그머니 잠자리에서 일어나 배달하곤 한다. 옆에서 부인이 말려도 그는 아무 말 없이 배달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얼음은 바람에 가장 약하다. 배달할 때는 항상 천으로 얼음을 감싸고 달린다. 조금이라도 싱싱한(?) 얼음을 공급하기 위해서다.

수시로 울리는 김 사장의 가슴팍 휴대전화가 또 울렸다. 그가 배달을 가기 위해 연 얼음창고엔 하얀 서릿김이 여름을 녹이고 있었다.

우문기기자 pody2@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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