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 총리의 사의 표명으로 여권 인적 쇄신의 마무리 수순인 내각 개편이 급물살을 타게 됐다. 이명박 대통령은 8월 첫째 주로 예정된 휴가 동안 인사 구상을 가다듬은 뒤 내달 10일을 전후해 후임 총리를 포함, 중폭 이상의 개각을 단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 사퇴
정 총리는 29일 오후 정부중앙청사에서 기자 회견을 갖고 "주요 정치 일정이 일단락되면서 대통령께서 집권 후반기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가 마련됐다고 생각한다"며 "지금이 사임의 마지막 기회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또 "생각했던 일을 이뤄내기에 10개월이란 시간은 너무 짧았고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은 너무 험난했다"고 소회를 밝힌 뒤 "국정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후임 총리가 결정될 때까지 최소한의 책무는 수행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이에 대해 "좀 더 같이 일하고 싶어 여러 번 만류했지만 국민과 나라를 위한 충정에서 사의를 표명했으며, 매우 안타깝게 여긴다"고 말했다. 이어 "총리 취임 이후 어떤 정치적 고려나 개인적 이해관계를 넘어 오로지 국가 미래와 정의로운 사회를 위해 헌신해 왔다. 비록 긴 시간은 아니지만 많은 기여를 해주신 것을 고맙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정 총리는 이날 오전 임태희 대통령실장을 통해 이 대통령에게 사의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총리는 앞서 6·2지방선거 직후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물러날 뜻을 밝힌 바 있다.
◆후임 총리, 깜짝카드 선보일까
여권의 7·28재보궐선거 승리 직후에 이뤄진 정 총리의 사퇴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일이다. 스스로에게는 '명예로운 퇴진'이라는 명분을, 이 대통령에게는 '새로운 시작'을 안겨줄 수 있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정 총리의 사퇴 결정에 따라 후임 총리 인선을 포함한 내각 개편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지금까지 거론된 인사들은 모두 무시하고 백지 상태에서 검토를 시작하겠다"며 "원점에서 충분히 살펴본 뒤 개각을 발표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전혀 물망에 오르지 않았던 '깜짝카드'가 선보일 가능성도 높아졌다.
후임 총리에 대해서는 '화합형' '정책형' '세대교체형' '정무형' 등 여러 유형별 인사가 동시에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권 일부에서는 최근 청와대 개편에서 사회통합수석·국민소통비서관·서민정책비서관을 신설한 점을 고려할 때 '화합형' 인사가 낙점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많다. 이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 회의에서 "통합의 근본은 소통"이라면서 "통합은 다양한 가치가 공존하면서 같이 가는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동안 이 대통령이 "마지막 날까지 일하겠다" "올 하반기부터 내년은 일할 수 있는 시기"라고 강조해온 점을 보면 '정책형' 총리가 바통을 이어받을 가능성도 높아 보인다. 반면 임태희 대통령실장·백용호 정책실장 등 청와대 참모진의 연령이 대폭 낮아졌다는 점을 들어 굳이 총리까지 '세대교체형'으로 하겠느냐는 회의적 시각이 제기되고 있다. 결국 이 대통령은 참신하면서도 집권 후반기 국정운영에 안정감을 더해줄 인물을 찾고 싶겠지만 여권 내 인재 풀에 마음에 쏙 드는 인재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개각은 당초 알려진 대로 7~9명이 바뀌는 중폭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재보궐선거 승리로 개각 폭이 작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지만 재임 2년을 넘겨 피로한 장수 장관들 대신 새로운 피를 수혈, 개혁에 박차를 가할 것이란 해석이다.
◆광복절에 후반기 청사진 제시
이 대통령은 30일 안상수 대표를 비롯한 한나라당 새 지도부를 청와대로 초청, 만찬을 함께한다. 이 자리에서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인적 쇄신 구상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또 집권 후반기 성공적 국정 운영을 위한 당청 간 긴밀한 협력을 당부하고 중도 실용 기조와 친서민 정책, 4대강 사업 추진에 대한 의견을 교환할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만남은 당초 이달 14일 전당대회 직후로 잡혀 있다가 재보선 일정 등을 감안해 미뤄졌다.
이 대통령은 8월 중순 이전 개각을 모두 끝낸 뒤 8·15 광복절 경축사에서는 집권 중후반기 청사진을 제시할 예정이다. 이미 지난주부터 이 대통령이 참모진과 함께 메시지 내용에 대한 검토에 들어갔다는 후문이다. 청와대 한 관계자는 "이번 경축사에는 남북·통일 문제보다는 우리 사회 내부와 관련된 부분이 강조될 것"이라며 "사회 소외계층을 지원해 '함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는 내용이 중심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상헌기자 dava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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