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역사에서 전쟁은 큰 범죄요, 주모하여 패배한 자들을 전범이라 부른다. 그런데 '문화'라는 말이 붙으면 무엇이든 연성화(軟性化) 되는 것 같다. '문화 전쟁'의 시대라고 해도 그리 심각하게 여겨지지 않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전쟁터가 아니라 실감은 나지 않겠지만 국가 부도니, IMF 구제금융이니 하는 말들이 전쟁보다 더 심각했던 기억을 갖고 있지 않는가.
그렇다면, 문화범죄(Crime against Culture)라는 말도 성립되는데 여기에 붙는 '문화'는 '가장', '기만', '왜곡'의 냄새가 난다. 수천 년 동안 중국에서 자행된 여러 차례의 훼불(毁佛)사건은 차치하고라도, 최근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에 의해 바미얀 석굴이 파괴된 사건을 접하고는 세계가 경악했고 '이라크의 고대 유물들을 보호하지 못한 미군은 문화적 범죄를 저지른 셈'이라고 맹비난한 이라크 고고학자의 말도 세계인에게 경종을 울렸다. 또 최근 프랑스법원은 우리가 제기한 외규장각 도서 반환소송에 대해 '문화재 약탈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기각, 장물이 국유재산임을 법적으로 공식화해 우리를 분노케 했다. 이 모두가 세계적인 문화범죄의 한 예들이다. 일본의 도둑연구회라는 단체에서 펴낸 '도둑의 문화사'라는 책에는 도둑질도 문화 현상이며 문화란 본질적으로 도둑질하는(모방하는) 행위라고 규정, '모방은 제2의 창조다'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고 있다.
살면서 우리는 문화범죄의 다양한 유형을 만나게 된다. 먼저, 디지털시대의 불법 다운로드. 이는 문화산업을 망치는 중대한 범죄행위이다. '굿다운로더캠페인'이 한창 벌어지고 있지만 정화될 조짐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또, 출판업계에서 골머리를 앓고 있는 베스트셀러를 조작하는 책 사재기도 독서문화를 해치는 범죄다. 그리고 '벤치마크'라는 토목용어를 차용하여 여러 분야에서 회자되기 시작한 벤치마킹은 표절이라는 모방범죄를 아무런 죄의식 없이 양산해왔다. 더군다나 그 행위들이 베끼기, 답습, 봐주기, 복지부동 등의 엔진을 달면서 더욱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또, 전시물 없이 박물관만 지어놓는 것처럼 소프트웨어 없이 하드웨어만 구축하는 것, 이것도 문화범죄라는 죄목에 포함시켰으면 좋겠다.
문화범죄에서 무엇보다도 가장 심각한 것은 왜곡이다. 곰곰이 따져보면 우리는 진실왜곡, 가치왜곡 그리고 역사왜곡의 와중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 왔는지 모를 일이다. 머리 위의 조그만 하늘만 쳐다보면서, 가보지 않은 길은 동구 밖도 천릿길처럼 여기면서 다양한 문화범죄의 희생물이 되어왔음을 고백해야 한다. 그리고 가능성과 개연성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서, 역사를 비틀어 만든 소비만능의 축제 속을 같이 걸어가고 있다. 문화와 경제의 이념적 단절은 역사의 단절이 배경이었다. 그러면서 문화는 생산성이 약하고, 경제성이 희박하다는 굴레를 쓰게 된 것은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문화가 소비될 수 있는 시장 여건만 만들어 놓으면 문화는 자동적으로 생산될 것으로 여긴다. 이것은 오히려 상징조작이라는 인식만 줄 뿐이다.
문화전쟁 시대에 미숙하게 옹산(甕算)으로 청사진을 펼치는 것도 문화범죄에 해당된다. 그나마 키워놓은 문화의 싹이 죽으면, 미필적 고의(未必的故意)에 의한 업무상 과실치사에 해당되는 것 아닐까. 혹시 문화범죄의 예방을 위해 오히려 문화인 길들이기를 시도하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문화범죄의 프로파일러(profiler)까지 되어야 하는 것은 피곤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문화를 누려야 할 문화 소비자가 감시자가 되는 세상은 제발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늘 그랬지만, 문화범죄의 가해자는 쉽게 눈에 띄지 않았다. 무엇 때문인지는 몰라도, 보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문화전쟁을 치른다면서, 문화범죄에는 왜 무신경했던 것일까. 문화전쟁 시대에 문화범죄를 저지르는 이는 문화 전범이다. 과격하지만, 문화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문화전쟁의 '포로'로 남을 그들에게 결코 관대해서는 안 된다.
문화 발전의 동력은 문화에 대한 무한한 신뢰에서 나온다. 차림은 좀 추레해도 눈빛은 형형한 그런 사람에게 끌리듯이, 정직한 문화와 사랑을 나누고 싶다.
김정학(천마아트센터 총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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