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26일 오후 6시 대구시 달서구 송현동에 위치한 ㅅ회센터. 저녁을 먹기에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회센터 안에는 벌써 수십 명의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 회를 즐기고 있었다. 문을 연 지 3개월 만에 입소문을 타고 성업하는 이유는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회를 마음껏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곳에서는 한 사람당 모듬(우럭·광어 등)은 1만3천원, 고급(참돔·농어)은 1만5천원, 자연산은 1만8천원을 내면 회를 무한리필 받을 수 있다. 샐러드·물회·김치알밥·생선까스 등 기본으로 제공되는 15가지 음식도 덤으로 즐길 수 있다. '음식을 남기면 1만원의 벌금을 부과한다'고 엄포 아닌 엄포를 놓을 만큼 푸짐하다. 박재영 점장은 "대구에서 회를 무한리필 해 주는 음식점은 우리가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서민들에게 싱싱한 회를 보다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기 위해 문을 열었는데 고객들의 반응이 대단히 좋다"고 말했다.
일정한 값만 치르면 음식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무한리필'이 주목받고 있다. 경기 침체로 주머니 사정이 얇아진 서민들의 알뜰 소비 전략과 맞물려 사업 영역을 확장하고 있는 것. 무한리필 음식점이 많아질수록 저렴한 가격에 원하는 음식을 양껏 즐길 수 있는 기회도 늘어 좋지만 '과연 수지가 맞을까' '좋은 식재료를 사용할까' 등 의문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최근 우후죽순처럼 등장하는 무한리필 음식점의 세계를 들여다 봤다.
◆무한리필의 역사
무한리필의 원조는 뷔페다. 뷔페의 변형된 형태가 무한리필이다. 음식업계에서는 무한리필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게 된 계기로 1997년 외환위기를 꼽는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지회에 따르면 외환위기로 인해 가계소득이 급감하면서 외식산업이 큰 타격을 입게 되자 등장한 것이 고기 뷔페였다. 특정 음식만을 저렴한 가격에 무제한 제공하는 고기 뷔페는 당시 한식·양식으로 양분돼 있던 뷔페문화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이후 뷔페라는 말 대신 무한리필이라는 수식어를 단 음식점이 여기저기 등장하면서 무한리필 문화가 뿌리내리기 시작했다.
등장 배경에서 엿볼 수 있듯이 무한리필은 경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지회에 따르면 무한리필 음식점은 호경기보다 불경기 때 많이 등장한다. 한 푼이라도 절약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좋은 창업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서영일 한국음식업중앙회 대구지회 총무부장은 "무한리필은 새로운 개념이 아니다. 여러 음식을 제공하는 백화점식 뷔페 대신 특정 음식만 취급하는 뷔페가 무한리필이다. 지갑이 얇아질수록 무한리필 음식점을 찾는 것이 소비자들의 심리다. 최근 무한리필 음식점이 많이 늘어난 것도 이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다양화되는 품목
무한리필 대상이 다변화되고 있다. 과거 고기에 한정되었던 무한리필 품목이 회, 생맥주, 조개구이 등으로 확장되고 있다. 대구 달서구 용산동에 있는 ㅂ조개구이점은 1인당 9천900원(3명 이상) 또는 1만1천900원(2명)에 키조개 등을 무한리필 해 준다. 1인당 3천원을 더 내면 새우까지 무한리필된다.
무더위로 시원한 맥주를 찾는 사람이 늘어나면서 맥주를 저렴하게 마실 수 있는 이벤트도 열리고 있다. 아웃백은 1인당 5천900원에 생맥주를 무제한 제공하는 행사를 진행 중이다. 아웃백을 방문하는 고객은 시간에 상관없이 생맥주를 주문하는 순간부터 100분간 생맥주를 무한리필 받을 수 있다. 베니건스도 생맥주를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서머 쿨 세트'를 출시했다.
시선을 대구 밖으로 돌리면 무한리필 대상은 더욱 넓어진다. 스테이크와 장어, 오리고기 등도 무한리필 대상이 되고 있다. 경기도 안양시에 있는 ㄹ하우스는 스테이크 무한리필로 이름 난 곳이다. 점심 1인당 2만5천원, 저녁 2만7천원이며 다양한 스테이크를 고루 맛볼 수 있다. 또 전남 목포에 있는 ㅅ 음식점에서는 바다장어가 무한리필된다. 심지어 숙박비만 내면 바비큐·과일·과자 등을 무제한 제공하는 무한리필 펜션도 있다.
◆무한리필의 경제학
장사하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밑지고 판다'는 것이다. 실제로 손해 보면서 물건을 판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고객에게 밑지고 판다는 인상을 판매할 뿐이다. 밑지고 팔 만큼 싸다는 인상을 앞세워 많이 파는 박리다매 전략이 무한리필에 숨겨진 가장 기본적인 경제법칙이다.
하지만 무한리필 음식점의 박리다매 전략은 기존의 박다리매와는 성격이 다르다. 한국음식업중앙회 한 관계자는 "유통 단계를 줄여 가격을 낮춘 것이 기존의 박리다매였다면 무한리필은 공짜를 좋아하는 심리를 활용해 매출을 늘려 가격 거품을 뺀 것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구책으로 이런 기형적인 형태의 박리다매가 출현하게 된 것이다"고 말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과 개인이 먹을 수 있는 양이 정해져 있다는 계산도 내재돼 있다.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은 어떤 재화를 소비하면 할수록 만족도가 떨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경제학 용어다. 한계효용이 떨어질수록 재화에 대한 소비는 줄어든다. 특히 음식은 한 번에 소비할 수 있는 한계가 정해져 있다. 일반인의 경우 고기를 2인분 정도 먹으면 배가 불러오기 때문에 3인분 이상 먹지 못하는 것이 보통이다.
한 음식점 관계자는 "무한리필 고기집의 경우 성인 1인당 2.5인분에서 3인분 정도 먹는다는 전제 아래 단가를 맞춘다. 기본음식을 푸짐하게 제공하는 것도 이유가 있다. 기본음식을 많이 먹을수록 본음식 섭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본음식에서 조금 손해가 난 것은 술 판매 등을 통해 보충한다"고 설명했다.
벤치마킹도 무한리필 음식점이 추구하는 주요 전략이다. 무한리필 대상이 많아진 이유도 벤치마킹에 있다. 한 음식점이 장사가 잘 되면 곧바로 비슷한 음식점이 생겨난다. 새로 창업하는 음식점은 기존 음식점을 그대로 모방하는 것이 아니라 종목을 바꾸거나 새로운 것을 추가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장어 무한리필 음식점이 잘 되면 장어에 삼겹살을 곁들이는 무한리필 방식으로 고객들을 유혹한다. 이러한 벤치마킹 과정이 되풀이되면서 다양한 무한리필 음식점이 등장하게 됐다.
음식의 질은 어떨까. 음식점마다 최상급의 식재료를 사용한다고 주장하지만 최상급으로는 수지를 맞출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의 입맛이 까다로워진 요즘, 단가를 낮추기 위해 무작정 싼 것을 고집할 수는 없다. 질 좋은 식재료를 낮은 가격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 능력이 무한리필 음식점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이 된다.
식재료 단가를 낮추기 위해 무한리필 음식점들이 추구하는 전략 중 하나가 체인화다. 체인화로 대량구매가 가능해지면 단가를 낮출 수 있기 때문. 무한리필 음식점이 체인점 모집에 열을 올리는 이유다. 음식업계 한 관계자는 "음식맛 못지 않게 가격도 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다. 무한리필이 각광받고 있는 이면에는 조용히 사라진 음식점도 많다"고 말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한국창업전략연구소 무한리필 음식점 성공전략
1. 유통비용을 줄이고 인건비 등 고정비용을 절약해 마진을 확보하라.
2. 싼 값이 매력적이어도 매장이 촌스러우면 안 된다. 서비스와 인테리어를 차별화하라.
3. 품질이 낮으면 외면당한다. 고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라.
4. 리필해 주는 음식 원재료를 안정적으로 구매할 수 있는 거래선을 확보하라.
5. 불필요한 잔반 발생을 최소화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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