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 대전 패배 후의 극심한 사회·경제적 혼란을 자양분으로 집권기반을 다지고 있었던 히틀러는 1933년 1월 바이마르 공화국 총리로 임명된다. 이듬해 제3제국은 그 흉측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 히틀러의 총리 임명에 도장을 찍은 사람이 파울 폰 힌덴부르크였다. 나치에 우호적이었던 대자본가와 귀족들의 압력을 이겨낼 힘이 그에게는 없었다.
폴란드 포즈난에 몰락한 프로이센 귀족(융커) 집안에서 태어났다. 융커의 자제들이 대부분 그러했듯 군인으로 입신했다. 1911년 대장으로 퇴역했으나 1914년 1차 대전이 터지면서 현역으로 복귀했다. 참모장 루덴도르프와 함께 펼친 탄넨베르크 전투에서 러시아군 9만 명을 포로로 잡는 혁혁한 전공을 세워 독일 국민의 큰 존경을 받았다. 탄넨베르크 전투는 전략가라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포위섬멸작전의 교과서로 꼽힌다. 독일의 패전 후 은퇴했다가 보수파의 지지를 업고 바이마르 공화국 2대 대통령이 됐으며 1932년 재선됐다. 히틀러를 싫어했지만 그렇다고 히틀러를 저지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히틀러를 막을 힘이 없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해도 그가 히틀러의 등장을 막지 못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분명하다. 1934년 오늘 사망했다.
정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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