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여름 휴가

긴 장마를 끝내고 타는 듯한 여름이 시작됐다. 올해는 유난히 더한 것 같다. 마음도 태양처럼 활활 타오를 때 대다수의 사람들은 여름 휴가를 생각한다.

휴가철이면 으레 나도 남다른 피서를 즐기려고 거창한 계획을 세우기도 했었다. 각자 형편에 따라 방법도 가지가지여서 가족 혹은 가까운 사람들끼리 미리 계획을 세워 일상을 벗어나고 싶어했고, 즐거움을 찾으려고 했었다.

이번 휴가는 달리할 것이다. 주변에 권하고 싶다. 대자연의 품에 안기는 것보다 자녀들과 조용히 나를 찾는 시간 속으로 떠날 것이다.

미국의 학자 로저 굴드는 "기분이 좋지 않거나 외로울 때, 후회스러운 기억이 떠오를 때 배가 고프고 반대로 누군가와 친밀한 감정을 느끼거나 믿음이 생겼을 때는 공복감이 사라진다"고 했다. '정서적 허기'를 채우기 위해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말 걸기를 해 보고 싶다. 여유로운 마음으로 보고 싶었던 책을 읽으며 재충전의 소중한 기회를 가질 게다.

얼마 전 입적한 법정스님의 '산에는 꽃피네 꽃이 피네'의 내용이다. "내가 사는 곳에는 눈이 많이 쌓이면 짐승들이 먹이를 찾아서 내려온다. 그래서 내가 콩이나 빵 부스러기 같은 걸 놓아 준다. 박새가 더러 오는데, 박새한테는 좁쌀이 필요하니까 장에서 사다가 주고 있다. 고구마도 짐승들과 같이 먹는다. 나도 먹고 그 놈들도 먹는다. 밤에 잘 때는 이 아이들이 물 찾아 개울로 내려온다. 눈 쌓인 데 보면 개울가에 발자국이 있다. 토끼 발자국도 있고, 노루 발자국도 있고, 멧돼지 발자국도 있다. 물을 찾아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그 아이들을 위해 해질녘에 도끼로 얼음을 깨고 물구멍을 만들어 둔다. 물구멍을 하나만 두면 그냥 얼어 버리기 때문에 숨구멍을 서너 군데 만들어 놓으면 공기가 통해 잘 얼지 않는다. 그것도 굳이 말하자면 내게는 나눠 갖는 큰 기쁨이다. 나눔이란 누군가에게 끝없는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우리들은 누군가에게 마음을 나누어 주기도 쉽지 않다. 거창한 계획보다 작은 울림으로 가족에게 사랑으로 다가가고, 서로에게 여유가 생긴다면 사람 밖의 사물과도 소통하고 싶다. 법정 스님처럼 수도자의 혜안으로 베풀지는 못해도 나눔을 실천하고 싶다. 또한 가족과 나를 아는 사람들에게 법정 스님의 얼음장을 깨는 정신을 나누고, 작은 실천을 통해 가벼운 행복을 느끼고 싶다. 더위를 피하기보다 더위 속에서 몸을 비우고 머리를 채우는 책과 함께 정서적 허기를 채우는 식단도 만들 것이다.

김창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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