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의창] 건망증

며칠 동안 폭염주위보와 열대야로 더운 여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내린 소나기로 모처럼 시원하다. 소나기가 그치고 나니 온 동네 매미들이 한 곳에 모여 있는지 귀가 멍멍할 정도로 울어댄다. 요즈음 매미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는데 아마도 도시의 불빛이 너무 밝아 밤이라는 사실을 잊은 듯하다. 나도 잊어버리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친한 친구를 만나면 집에 돌아갈 시간을 잊어버리고, 기념일을 항상 잊어버려 아내에게는 '기념일 건망증환자'라는 진단을 받았다. 이상하게도 며칠 전까지는 기억을 하고 있다가 기념일 당일만 되면 까맣게 잊어버리니 내가 생각해도 증상이 심각하다.

치과 치료를 하다보면 건망증이 심한 분들을 종종 보게 되는데 어떤 분은 치아를 발치한 후에 주의사항을 설명하면서 그 내용이 적힌 카드를 주었는데 잠시 후 다시 찾아와 주의사항이 무엇인지 잊어버렸다고 했다. 내용을 다시 설명하면서 살펴보니 손에 좀 전에 준 주의사항 카드를 보험증과 함께 쥐고 있는 게 아닌가. 즉 주의할 내용을 적은 카드를 받았다는 사실도 잊어버린 것이었다.

한 번은 50대 아주머니가 간단한 충치치료를 받은 적이 있었는데 몇 시간 후에 다시 내원했다. 치료한 부위가 불편해 다시 찾아왔나 싶어 "치료한 곳이 불편하세요"하고 물었더니 아주머니는 머뭇거리면서 "저 혹시, 진료비를 안 낸 것 같은데···."하는 것이었다. 차트에도 진료비 내역이 기록돼 있고 직원들에게도 확인해 진료비를 지불했다고 하니 웃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고 가셨다. 그런데 조금 지나서 다시 와서 진료비를 안 내고 간 것 같다면서 진료비가 얼마인지 묻는 것이었다. 순간 당황하였지만 건망증이 심해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은 것은 기억이 나는데 진료비를 냈는지 안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래서 진료비는 받았으니 걱정할 필요 없고 혹시 잊어버려도 다음 진료 때 받으면 되니 안심하라고 하면서 돌려보낸 적이 있었다.

건망증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닌데 치과치료를 잘 받지 않는 분들 중에는 이전의 치료에 대한 기억이 너무 또렷해 치료를 미루는 분들이 많다. 이러한 분들은 이전의 치료에 대한 나쁜 기억을 조금 잊어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최근에는 건망증 때문에 로또에 당첨된 황당한 사건도 있었다. 미국에서 건망증이 심해 툭하면 아내에게 핀잔을 듣던 한 남자가 아내의 부탁을 까맣게 잊고 있다가 집에 거의 도착해서 생각이 나서 편의점에 다시 갔다가 100만 달러의 로또에 당첨된 것이었다. 건망증으로 인해 하루 아침에 부자가 된 남자는 무엇보다 아내에게 건망증이 심하다는 구박을 받지 않게 된 것을 기뻐했다고 한다.

진료를 하다보면 환자들과의 좋은 기억과 나쁜 기억이 있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이 잊히지만 최소한 처음 치과의사면허증을 받았을 때와 개원 초의 생각만은 잊지 않으려고 되새겨 본다.

장성용<민들레치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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