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염이 연일 기승을 부린다. 30도를 웃도는 더위가 아스팔트마저 녹일 기세다. 붐비는 도심을 걷다 부대끼면 짜증부터 난다. 밀리는 출퇴근길 경적소리도 듣기 싫다. 떠나고 싶다. 냉장고에서 꺼낸 수박을 쫙 갈라서 먹는 것도 좋지만, 차가운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싶다. 에어컨 바람이나 차가운 계곡물은 무더위를 잠시 잊게 한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해 들려오는 시원한 소식은 더위를 더 오랫동안 물리친다.
월드컵의 뜨거운 열기는 초여름의 더위를 완전히 물리쳤다. 16강 진출의 뜨거운 감동은 6월의 더위를 씻어내고도 여전히 여운을 남기고 있다. 신영복 교수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여름 더위에서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좁은 공간에서 뜨거운 사람의 몸과 부대끼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16강의 감동에 서로 얼싸안은 옆 사람의 체온은 뜨거웠지만, 결코 싫지 않았다.
여자 월드컵과 핸드볼은 7월의 더위를 넘어 8월까지 시원한 바람을 전하고 있다. 2010 세계 여자 주니어 핸드볼선수권대회에서 한국 대표팀은 3, 4위전에서 비록 석패했지만,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을 연출했다. 20세 이하 여자 월드컵 한국대표팀도 짧은 역사, 짧은 신장과 체격 조건, 열악한 지원에도 사상 처음 3위 신화를 이뤘다. 남자대표팀의 박주영을 비롯해 대구경북 출신 3명이 여자 월드컵 대표팀의 중심에서 활약하는 모습을 보며 뿌듯함을 느꼈다. 한국 여자 골퍼들이 요즘 LPGA에서 나란히 TOP 10에 이름을 올렸다는 소식도 더위를 잊게 한다.
스포츠에서 정치나 경제에 눈을 돌려도 시원한 소식이 있을까.
18대 후반기 국회 부의장 자리를 두고 박종근 의원과 이해봉 의원이 서로 밀고 당기다 다른 곳에 넘겨줬다. 주성영 의원은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뽑은 7월 전당대회에서 김태환 의원과 후보단일화까지 이뤄놓고도 '능력'이 모자라서인지, 친박계를 위한 대승적 '양보'인지 갑자기 불출마했다. 국회 18개 상임위원회에서 지역 의원이 상임위원장을 맡은 자리는 김성조 의원의 기획재정위원회 1곳이 고작이다. 반면 민간인 불법사찰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물의를 빚고 있는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지역 출신이 주축이다.
지역 현안과 관련해 몸을 던지는 국회의원이나 단체장도 찾아보기 쉽지 않다. 수도권 확대로 블랙홀 우려를 낳았던 세종시 수정안에 대해선 몇몇 국회의원을 제외하고 대구'경북 두 광역단체장을 비롯해 상당수 지역 정치인들이 몸을 사렸다. 세종시 수정안의 후폭풍은 결국 한목소리를 냈던 충청권 정치인들 덕분(?)에 피해갈 수 있게 됐다.
대구경북의 핵심 인프라가 될 동남권 신공항에 대해서도 지역민과 상공인들의 열망에 비해 정치권의 대응은 그렇게 절실하지 않은 것 같다. 대구경북, 경남, 울산 등 5개 광역단체장이 힘을 모은다고 하면서도 정작 신공항 입지로 꼽는 '밀양'에 공동으로 현장방문조차 하지 않고 있다. 지역 국회의원들도 부산의 '동료'들을 의식해서인지 국회의사당에서 신공항 밀양 유치에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있다. 이런 면에서 K2 공군기지 이전을 위해 '나 홀로' 역투를 벌이는 유승민 의원에게 박수를 보낸다. 유 의원은 2005년 10'26 대구 동을 국회의원 재선거 당시 선거사무실에서 K2 소음을 체험한 뒤 5년째 K2 이전을 집요하게 역설하고 있다. 세종시에서 동남권 신공항을 넘어 지역의 핵심현안에 대해 유 의원처럼 집요하고도 치밀하게 천착하는 정치인들이 늘어나 스포츠에서뿐만 아니라 정치나 경제에서도 폭염을 식히는 시원한 소식을 들려주길 기대한다.
김병구 사회2부 차장 k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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