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오후 대구 서구의 한 아파트 경비실. 6.6㎡(2평)도 채 되지 않는 좁은 경비실에서 최명모(63) 씨가 숨을 헐떡였다. 가마솥 더위에다 통풍도 되지 않는 경비실을 지켜야 하는 최 씨는 얼굴에 흐르는 땀을 닦아 내기에 바빴다. 내리쬐는 햇볕을 막아보려 만든 가림막도 더위를 막기에는 역부족. 얼굴을 선풍기에 바짝 들이밀어 보지만 온몸에 흐르는 팥죽땀은 가시지 않는다.
최 씨는 "여름휴가철은 경비원들에게는 가장 바쁘면서도 잔인한 때"라며 "땡볕 아래에서 재활용 수거와 주차 관리를 하다 보면 땀이 비 오듯 흐른다"고 말했다.
그는 무더위와 사투를 벌이지만 수중에 들어오는 돈은 한 달에 90만원이 안 된다. 그러나 그만둘 생각은 엄두도 못 낸다. 2006년 회사를 그만둔 후 3년 만에 어렵게 구한 일터이기 때문이다.
한때 퇴직자들이 몰리면서 '꿈의 직장'으로까지 불렸던 아파트 경비원이 열악한 근무여건 속에 힘겨운 여름을 보내고 있다. 폭염 속에 건강관리가 쉽지 않지만 냉방은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다.
대구고용노동청에 따르면 아파트 경비원과 같은 '감시직 근로자'는 노동부 장관 승인을 받은 사업장의 경우 최저임금의 80%까지 받을 수 있다. 하지만 근로휴식시간, 휴일 등은 일반직처럼 보장받지 못한다.
달서구 한 아파트의 경우 2년 전부터 아파트 무인화를 위해 야간근무를 없애면서 전체 경비원 30명 중 10여 명이 일자리를 잃었다. 경비원 한모(62) 씨는 "최저임금법이 적용되면서 경비원들의 처우는 오히려 더 나빠졌다"며 "일자리는 갈수록 줄고 월급도 오르지 않았다"고 하소연했다.
언제 잘릴지 모르는 상황이다 보니 한 사람 들어가는 좁은 경비실에 에어컨을 놓아달라고 요구할 수도 없는 노릇. 2년 가까이 중구 한 아파트에서 경비를 서고 있는 정모(65) 씨는 "이 나이에 여기 아니면 어디서 일할 수 있겠냐"며 "찌는 더위 속에 긴팔 유니폼을 입고 단추도 목까지 채우고 있으면 숨이 콱 막히지만 에어컨 얘기는 입밖에 꺼내지도 못한다"고 했다. 정 씨는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지열 때문에 한낮에는 아파트 안 나무그늘에서 근무를 선다고 했다.
경비 수주를 따내려는 용역업체들이 임금을 후려치면서 경비원의 근무여건을 개선하려는 노력은 기대도 할 수 없다.
중구 한 용역업체는 "수주 단가가 턱없이 낮기 때문에 경비원 월급을 주고 나면 남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며 "경비원들의 처우 개선은 꿈도 못 꿀 형편"이라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경비원들은 근무환경 개선은 힘들더라도 더위를 참아낼 수 있도록 주민들이 조금만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고 있었다. 한 경비원은 "아파트 경비원들 말고도 찜통더위를 악으로 견뎌야 하는 고령의 근로자가 수없이 많다"며 "지나는 시민들이 시원한 물 한잔이라도 건네주거나 조금만 더 마음을 써 주면 큰 위안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임상준기자 news@msnet.co.kr
노경석 인턴기자 nk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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