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회나무 잃은 안동 '祭亡樹歌'

안동댐 입구 지켜주던 임청각 상징 회회나무
안동댐 입구 지켜주던 임청각 상징 회회나무
2008년 누군가 밑동 잘라버려 영양제 투입
2008년 누군가 밑동 잘라버려 영양제 투입
조심조심 움 틔우며 강한 생명력 보여줘
조심조심 움 틔우며 강한 생명력 보여줘
어제 새벽 느닷없는 교통사고 뿌리째 뽑혀
어제 새벽 느닷없는 교통사고 뿌리째 뽑혀

2010년 8월 3일. '정신문화의 수도' 안동 사람들은 누이를 잃고 눈물짓던 월명사(月明師)처럼 오랜 세월 안동인들의 삶과 애환, 온갖 오욕의 역사를 간직한 채 함께해 온 안동댐 입구 임청각 앞 회화나무(일명 회나무·사진 1)를 잃고 '제망수가'(祭亡樹歌)를 부르고 있다.

2년 전인 2008년 8월 22일 새벽 누군가에 의해 밑동이 싹둑 잘린 채(사진2) 길바닥에 쓰러져 안타까움을 줬던 이 회나무가 주민들의 염원으로 밑동 한쪽에 다시 움을 틔우고 푸른 가지를 키워내(사진3) 질긴 생명력을 보였지만 3일 교통사고로 뿌리째 뽑혀(사진4) 영원히 안동인들 곁을 떠나 버렸다.

3일 오전 5시 40분쯤 이모(25) 씨가 운전하던 승용차가 이 회나무를 정면으로 부딪쳐 뿌리째 뽑히는 사고가 발생해 운전자와 함께 타고 있던 김모(26) 씨가 중상을 입었다. 2년 전 밑동이 잘린 사고도 같은 새벽 5시쯤에 일어났다.

안동댐 진입로에 서 있던 이 회나무는 고성 이씨 종택인 99칸 임청각과 함께해 온 역사적 상징목이었다. 일제가 철도를 개설하면서 임청각 아래채를 일부러 헐어버렸지만 이 나무는 꿋꿋하게 서 있었다. 1970년 당시 안동댐을 건설하고 도로를 닦을 때에도 이 나무는 건재했다.

나뭇가지를 베어내던 인부가 죽고 나무 밑동을 훼손하려던 중장비 삽날이 부러지는 일로 인해 지역민들은 이 나무를 신목(神木)으로 추앙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나무는 일제 강점기의 설움과 아픔, 안동댐 건설 등 근대화 과정의 삶과 애환은 물론 임시정부 초대 국무령을 지낸 석주 이상룡 선생의 우국충정이 서린 안동의 역사와 함께했다.

또한 해마다 단오날이면 이 나무에 그네를 매달아 한복을 차려입은 여인들이 그네를 탔고 새하얀 백사장에 소풍 나온 아이들의 정겨운 모습 등 안동사람들의 삶의 한 궤적이 서려있기도 했다. 안동 사람들의 삶의 궤적과 함께해 온 이 회나무가 훼손되자 안동시는 영양제를 투입하고 펜스를 설치하는 등 나무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다. 지역 주민들은 잘린 나무 밑동에 국화꽃과 막걸리를 올리고 명복을 빌었으며 새 생명으로 자랄 수 있기를 기원했다.

이 같은 안타까움과 염원 때문이었을까. 지난해부터 이 회나무 한쪽으로 10여 개가 넘는 새싹들이 자라나는 등 질긴 생명력을 보이기도 했다. 주민 신용환(85·안동 법흥동) 씨는 "댐이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이 나무와 백사장은 안동 사람들에게 최고의 쉼터였다"며 "오랜 세월 이웃 같았던 회나무가 이제 뿌리째 뽑혀 우리 곁을 영영 떠나버려 가슴을 아프게 한다"고 했다.

안동·엄재진기자 2000j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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