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기고] 강이 자비로워지려면…

생명에게는 물 만큼 자비로운 것이 없다. 특히 사람은 몸의 60~70%가 물로 구성돼 있고 물 없이는 3~4일 이상 살 수 없다. 다른 중생들도 정도 차이가 있을 뿐 물은 삶에 절대적 요소인 것이다. 그 물은 지하수를 통해서도 얻을 수 있으나 대부분 강과 강물이 스며나오는 지표수에서 얻을 수밖에 없다.

인간은 군거(群居) 동물이기 때문에 물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강 주위에 몰려 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같은 강물을 먹는 지역에 마을을 비롯한 공동체들이 생겨나면서 문화가 발생하고 발전해왔다. 인류문명의 발상지가 모두 강변인 까닭도 그 때문이고 부처님의 구도 행각과 득도에 이르는 모든 경로에 강이 존재하고 주요 경전에 갠지스강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래서다. 인간은 육체적 생명을 위해 강물이 필요하고 정신적 생명의 바탕이 되는 문화를 위해서도 강물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나 강이라고 모두 생명의 강은 아니다. 생명체들이 필요한 만큼의 수량이 있어야 하고 오염 피해를 입지 않을 만큼 맑아야 한다. 맑은 물과 풍부한 물은 상관관계가 높기 때문에 강은 유지수 이상의 충분한 수량을 확보해야만 맑고 깨끗한 물을 흘려보낼 수 있다. 이러한 강이 생명의 강이고 중생들에게는 자비의 강이 되는 것이다.

낙동강과 영산강은 강의 정비가 이루어진 한강과 달리 오래 전부터 강바닥이 마르는 구간이 많았다. 평소 강의 수량이 부족해 강 유역에서 흘러 들어온 오'폐수를 자정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그것이 자주 죽음의 강을 만들기도 했다. 지금처럼 이상 기후가 일상화 된 이래 갈수기의 수질은 물고기와 각종 수서 생물 등 생명체가 살기 어려울 지경에 이르렀고 홍수기엔 주변 취락의 주민들에게 엄청난 피해를 주어온 것을 이 지역 사람들은 모두 뼈저리게 알고 있다.

4대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 많은 종교인들이 반대를 하고 어떤 스님은 소신공양(燒身供養)으로 극단적 의사 표현을 하기에 이르렀다. 강을 막고 강을 준설하면 거기에 사는 생명들이 희생된다는 것이 이 분들의 주된 반대 이유다. 물론 현재의 강을 어떤 형태로든 토목사업으로 변화를 시킨다면 생명체가 적든 많든 희생될 가능성은 크다.

그러나 갈수기와 홍수기의 강을 경험한 사람들은 현재의 강을 방치하면 더 큰 생명체의 재앙이 닥치리라 예견한다. 현재의 강을 '보존'하는 것보다 맑고 풍부한 강물이 흐르도록 강을 '보전'하는 것이 장기적으로 생명을 지키고 살린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강물은 곧 생명의 자비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4대강 정비 사업에 반대하는 분들도 환경과 생명을 지키자는 주장이고 지지하는 분들도 환경과 생명을 지키자는 주장을 펴고 있다. 모든 생명체에게 자비의 강이 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무조건 지지와 찬성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실적 검증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잘못된 공사가 이루어진다면 그것을 반대하고 합당한 토목사업을 벌인다면 지지를 받는 것이 마땅하다. 찬반 이전에 현장의 논의를 통해 생명체에게 기쁨과 행복을 주는 자비의 강을 만드는지 여부를 검증하는데 찬반 단체들이 함께 뜻을 모으는 것이 동체대비의 정신을 실현하는 것이 아닐까.

재원 마하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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