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원태의 시와 함께] 피안(彼岸) / 이은림

저 집들, 언제 강을 건너

저렇게 무덤처럼 웅크리고 앉았나

아무도 몰래 건너 가버린 저 산들은

어떻게 다시 또 데려오나

젖은 길만 골라 가는 낡은 나룻배가

산과

나무들과 꽃들,

풀밭을 다 실어 나를 건가

남아있던 불빛마저 참방참방 뛰면서

저편으로 가는구나

환하다,

내가 없는 저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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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쪽'은 내가 없으므로 비로소 '피안'입니다. 내가 거기 없으므로, 언제나 그리운 곳이요, 가야 할 곳이요, 가고 싶은 곳이요, 언젠가는 가고 말 곳이기도 합니다.

'저쪽'이 있어 비로소 '이쪽'이 있습니다. 모든 존재들은 끊임없이 '저쪽'을 지향하며 '이쪽'을 견디며 살아갑니다. 집과 산들, 나무와 꽃들과 풀밭들도 다 차별 없이 생명의 본향(本鄕)이라 할 '저쪽'으로 건너가야 할 운명입니다. "남아있던 불빛마저 참방참방 뛰면서/ 저편으로 가는구나"라는 구절은 아름답다 못해 서러울 지경입니다. 존재들은 이렇듯 하나같이 눈물겹도록 아름답습니다.

'저쪽'이 있어 '지금 여기'의 삶은 더욱 값지고 소중하며, 유일한 것이어서 신성한 것으로 승화되기도 합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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