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패턴'이 숨어있다

버스트/A. L. 바라바시 지음/강병남'김명남 옮김/동아시아 펴냄

저자는 차를 운행한 구간을 기록, 분석하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인간 미래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차를 운행한 구간을 기록, 분석하면 일정한 패턴을 발견할 수 있다면서 이를 토대로 인간 미래행동을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전화 한 통 없고, 이메일 한 통 없다. 만나자는 사람도 없고, 해야 할 일도 없다. 무료한 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중요한 이메일이 온다. 미처 답장을 하기도 전에 또 다른 이메일이 도착한다. 전화벨은 끊임없이 울리고, 손님이 찾아오고, 중요한 모임이 생겨난다.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터지고, 다 끝난 줄 알았던 일이 다시 골칫거리로 부상한다. 어째서 이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일까. 심심할 정도로 일이 없더니, 바빠 죽을 지경으로 한꺼번에 일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지은이는 이 폭발적인 시작이 바로 인간 생활의 '버스트'(bursts'작약, 파열시키는 무엇)이며, 이런 현상은 '복잡하게 얽힌 소셜 네트워크의 자연스러운 산물'이라고 말한다.

우주에는 무수히 많은 별들이 있다. 이 별들은 태양과 지구, 달처럼 서로 잡아당긴다. 그 인력 덕분에 가만히 있지 않고 돈다. 그러니 서로 관계하고 있다. 우리는 그 별들 사이의 인력에 대해 정확하게 알 수 없고, 또 정확하게 알 필요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살이의 문제에 이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에는 약 5천만 명의 사람들이 산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관계를 맺고 있으며, 어떤 사람의 행동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이 영향 관계 역시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일일이 예측하기보다 아예 포기하고 애매하지만 확률적인 방법을 쓴다. 일기예보, 주식시세 예측 등이 좋은 예다.

인류는 자연을 이해하기 위해 자연의 구성 성분을 하나씩 잘게 쪼개 파악하려고 했다. 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전체를 이해하는 데 훨씬 쉬울 것이라고 가정했던 것이다. 이것을 '환원주의'(Reductionism)라고 하는데 환원주의는 20세기 과학 연구를 이끌어간 원동력이었다. 인류는 자연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분자를 연구했고, 복잡한 인간 행동을 이해하기 위해 개별 유전자를 연구했다. 유행과 종교를 알기 위해 예언자를 연구했다. 그럼에도 세상을 알 수는 없었다. 자연은 오직 한 가지 방법으로 재조립할 수 있는 잘 설계된 퍼즐이 아니었던 것이다.

세상에는 이 순간에도 많은 사건과 현상이 발생한다. 각각의 사건과 현상은 다른 조각들과 연결돼 있으며 그것들은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나고 사라지거나 영향을 받아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따라서 현상(행위)을 이해하려면 '본질적인 분자' 자체뿐만 아니라 복잡한 관계, 즉 '소셜 네트워크'를 알아야 하는 것이다. 소셜 네트워크는 분자처럼 작은 단위로, 정해져 있지 않다. 그것은 변한다. 그러나 '그 복잡한 관계 속에도 엄격한 규칙이 있다'는 것,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패턴이 숨어 있다'는 것이다.

인류 역사나 개인의 삶에 일정한 법칙이 있다니, 이게 말이 될 소리인가? 인간은 자연법칙에 따라 운동하는 물질이 아니라 자유의지로 움직인다. 언제나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행동하지도 않는다. 그렇게 본다면 지은이가 주장하는 패턴이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지은이는 우주의 수많은 별들이 서로 잡아당기듯, 사람의 행동 역시 '인과적 관계'가 있으며, 그 인과관계 속에 어떤 규칙(패턴)이 있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휴대폰 이용과 인터넷의 발전으로 블로그, 카페, 트위터 등 사용 기록을 통해 사람의 행동 패턴을 찾아내고 예측할 수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에는 디지털 미디어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행위기록을 토대로 사람들의 행동을 예측하고자 하는 시도가 많이 있다. 쉽게 말해, 독자인 당신이 쓴 휴대폰 기록, 당신이 운행한 자동차 거리, 방문장소, 만난 사람, 이메일, 웹 브라우징 패턴, 병원방문 패턴 등을 통해 당신의 행동패턴을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는 있다. 어떤 날은 전혀 다른 목적지로 자동차를 몰았을 수 있고 전혀 낯선 이와 전화통화를 나누었을 수도 있다. 또 한두 번 통화, 혹은 한두 번 이메일을 주고받는 것으로 관계가 끝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자주 반복되는 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숨어 있는 어떤 '인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지은이는 이를 통해 '인간 행동 패턴을 알아내고 미래 행동을 예측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두렵게도 이런 예측은 '비 올 확률 30%라고 말하는 일기예보'보다 훨씬 정밀할 수도 있다. 지은이는 인간 행동을 예측하는 기술이 앞으로 점점 더 발달할 것이고 우리는 '미래의 프라이버시'를 박탈당할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과학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인간행동 역학 혹은 패턴을 다루는 '사이언스 팩션'인 만큼, 절반 이상을 인류의 역사적 행위나 사건을 보여주는 데 할애하고 있다. 그래서 역사소설 읽듯 술술 읽을 수 있다.

지은이 바라바시는 1967년 헝가리의 트란실바니아 태생으로 미국 노트르담 대학교 물리학 교수를 거쳐, 노스이스턴 대학교 특훈교수 겸 복잡계 네트워크 연구센터장을 맡고 있다. 21세기의 신개념 과학인 복잡계 네트워크 이론의 창시자로, 휴대전화, 월드 와이드 웹, 온라인 커뮤니티 등 자연적, 기술적, 사회적 시스템들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설명하려고 애쓰고 있다. 448쪽, 1만8천원.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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