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신남희의 즐거운 책 읽기] 영화로 보는 독일문화 /김창우 /신아사

우연히 본 한 편의 영화가 오랫동안 마음 한쪽을 묵직하게 채운다. 『타인의 삶』이란 독일 영화로 통일 이전 동독이 배경이다. 주인공은 동독의 국가안전부 슈타지 대위인 비즐러. 그가 도청하고 감시하는 대상은 유명한 극작가 드라이만이다.

비즐러는 드라이만의 일상을 감시하면서 점점 그에게 호의를 품게 된다. 드라이만의 애인이자 동거녀인 여배우 질란트는 문화부 장관의 총애를 받고 있다. 문화부 장관은 질란트와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가고, 질란트는 드라이만의 안전 문제 때문에 마지못해 문화부 장관의 요구에 응한다. 결국 동독을 비판하는 글을 서방언론에 발표한 일 때문에 드라이만은 의심을 받게 되고, 비즐러는 그들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데….

특히 마지막 장면이 여운으로 남는 이 영화는 독일의 플로리안 헹켈 폰 도너스마르크 감독 작품이다. 이 영화는 사회주의 동독 정권이 국가안보라는 미명하에 자국민들에게 저지른 조직적 위협과 괴롭힘, 고문 등을 보여준다. 국가 정보기관은 정보수집 업무에 전념해야 마땅하지만, 독재정권들은 정보기관에게 정치경찰의 업무까지 전담하게 하여 국내통치에 악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악명 높았던 동독 국가안전부 슈타지의 경우 그 대부분의 기록들이 보존되어 피해자들이 열람할 수 있게 됨으로써 이들이 저지른 범죄행위들이 낱낱이 공개되었다.

경북대 김창우 교수의 『영화로 보는 독일문화』에 이 영화가 소개된 것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는지. 연극 연출가이자 지역 연극계의 든든한 선배 노릇을 해온 김창우 선생은 이 책에서 영화를 통해 독일의 사회문화를 소개한다. 히틀러의 제3제국의 잔재와 1950년대 독일, 1960년대 이후 서독 좌파 지식인들의 저항과 좌절, 분단된 조국과 통일의 상처 등을 제목으로 파스빈더, 알렉산더 클루게, 마르가르테 폰 트로타, 세바스티안 페터슨 등의 영화가 소개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보고 충격을 받았던 폴커 슐렌도르프의 영화 『양철북』도 소개한다. 권터 그라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이 작품은 2차대전 직전과 나치스 시절의 독일을 다룬다. 스스로 성장을 멈춘 소년 오스카가 보는 시대는 부도덕하고 추악하다. 오스카는 조잡한 장난감 북인 양철북을 치며 불의한 세상에 항거한다. 지금 보아도 여전히 충격적일 이 영화의 각 장면들은 불의한 시대에 대한 은유이다.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인기 있는 책이었던 잉게 숄의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자의 죽음』은 나치에 항거하다 처형당한 뮌헨대학 재학생 쇼피 숄과 그녀의 오빠였던 24세의 뮌헨대학 의대생 한스 숄, 역시 뮌헨대학 의대생이었던 25세의 알렉산더 슈모렐 3명의 실제 이야기이다. 이 책을 영화화한 미카엘 베르호벤 슈미트의 『백장미』, 마르크 로테문트의 『소피 숄의 마지막 나날들』이라는 영화도 소개된다. 나치의 폭력과 기만, 억압에 대해 목숨을 걸고 저항에 나선 어린 학생들. 그들은 '백장미 전단'을 통해 독일 지식인들에게 나치의 파시즘을 용납해서는 안 되며, 수세적인 저항에라도 나설 것을 호소한다. 영화로 다시 감상하는 이들의 이야기는 시간을 뛰어넘는 감동을 준다.

전후의 잿더미에서 독일 경제를 자본주의 최고의 수준으로 끌어올린 서독인들의 '라인강의 기적'이 한국전쟁에 빚지고 있다는 것, 경제부흥의 큰 흐름에 묻혀버린 서독 사회의 어두운 이면, 2차 대전 이후 독일 현대사회의 가장 커다란 역사적 사건이었던 '68혁명'과 그 사상적 배경에 대해서도 관련 영화를 통해 자세히 소개한다.

외국인 유학생에게 장학금 혜택을 줄이겠다는 정부 방침에 차별이라며 항의하는 독일 대학생들과, 자신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낼 수 있다며 정부에 더 높은 세금 부과를 요구하는 독일인들에 대한 기사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나치시대를 극복하고 오늘날 독일인들의 앞선 의식과 제도를 만든 것이 무엇인지 책을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본다. 영화를 통해 사회와 시대 읽기는 역사책을 읽는 것과는 다른, 살아있는 사람들의 숨결을 느낄 수 있어서 좋다.

(새벗도서관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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