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 어느 판사의 죽음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다고 한다. 그러나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실제 하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은 오늘도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주어진 일에 매달려 있다. 그러다 보니 '하고 있는 일'과 '하고 싶은 일'과의 거리는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고 스트레스는 높아진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스스로 스트레스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현실 아닌가.

문제는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층이라고 해서 이런 스트레스가 줄어지지는 않는 모양이다. '천석꾼 천 가지 걱정, 만석꾼 만 가지 걱정'이라고 했다. 그래서인가, 전직 대통령을 포함해 대기업 총수, 유명 탤런트, 그리고 앞날이 창창한 젊은 층의 잇단 자살 소식은 더 이상 새로운 소식이 아니다.

며칠 전, 대구지법 어느 부장판사의 자살 소식과 함께 그가 남긴 글에서 우리는 또 한 편의 '사회의 그늘'을 읽는다. 그는 홈페이지에 "판사직은 원고와 피고 모두를 의심하는 직업"이라고 했다. 정의의 심판을 내리는 신성한 판사직, 선망의 직업인데도 이처럼 본인에게는 엄청난 부담감으로 작용했으니 그 심적 고통은 어떠했겠는가.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 프랑스 사회학자 에밀 뒤르켐은 '인간은 존재의 근거를 삶에서 찾지 못할 때 자살한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지식인들의 자살이 여기에 해당한다고 했다.

우리는 무엇보다 목숨을 중히 여기는 유교 사상에 젖어있다. 그러나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사회가 다양화되면서 자살은 급증하고 있다. 빈곤층은 상대적 빈곤감으로 목숨을 끊고, 상류층은 이상(理想)과의 괴리로 삶을 저버리니 OECD 국가 중 한국이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얻었다. 10대는 학교 성적 때문에, 20대는 취업 때문에, 30'40대는 사회와 가정에 대한 책임감 때문에, 50'60대는 소속에서 이탈된 상실감 때문에 자살한다고 하니 이런 사회구조 속에서 살아남은 것에 오히려 감사할 따름이다.

오죽했으면 죽음을 택했을까. 그러나 한 지식인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때까지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한 사회는 과연 건강한 사회인가. 국민소득 증대에 넋이 빠져 우리 모두 '인간의 얼굴'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한다.

윤주태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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