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연애탐구 시대…2천년 전이나 지금이나 '기술'이 필요해!

이성 사로잡을 처방 구하기 열풍

요즘 연애 관련 책들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영풍문고 대구삼성금융프라자점의 경우 아예 별도의 코너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요즘 연애 관련 책들의 출간이 잇따르고 있다. 영풍문고 대구삼성금융프라자점의 경우 아예 별도의 코너까지 마련해 두고 있다.
최근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최근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
연애 탐구 바람의 또 다른 진원지 영화
연애 탐구 바람의 또 다른 진원지 영화 '방자전'

'여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고 작업 성공률도 높은 장소는 극장이다. 여자의 최측근을 활용해라. 선물과 편지를 자주 보내라.' '남자의 마음을 얻으려면 몸 관리는 필수다. 화장은 혼자서 은밀하게 해라. 신체 단점을 감춰라. 남자의 애를 태워라. 쉽게 허락하지 마라. 남자의 라이벌을 활용해라.'

잘나가는 연애 전문가의 말이 아니라 최근 출간돼 화제를 모으고 있는 '오비디우스의 사랑의 기술'에 나오는 대목이다. 2천여 년 전 로마 시대를 살았던 시인 오비디우스가 청춘 남녀에게 전하는 연애의 기술은 오늘날과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다.

#30대 회사원 A씨는 최근 소개팅을 통해 마음에 드는 남자를 만났다. 그동안 여러 번 소개팅을 했지만 이번처럼 마음에 와 닿는 상대는 만나지 못했다. 이제 결혼도 생각할 나이. 그녀는 모처럼 찾아온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아 속칭 연애 박사라는 친구에게 자문을 구했다. 하지만 신통한 대답은 들을 수 없었다. '여자는 튕겨야 한다. 먼저 전화하지 마라' 등 뻔한 말만 들었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녀가 내린 결론은 연애 전문가들의 노하우가 담긴 연애서를 탐독하는 것. 그녀는 서점으로 달려가 남자들의 심리를 분석한 책과 상대에게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 등을 소개한 책을 구입한 뒤 열심히 탐독하고 있다.

매력적인 이성을 유혹하고 싶은 마음은 인간이 지닌 보편적 정서다. 연애의 기술이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의 주된 관심사가 된 까닭이다. 최근 '연애도 기술이다. 배워야 연애에 성공할 수 있다'는 연애의 법칙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극장가에서는 '방자전'이 대담한 연애 기술과 고전 비틀기를 무기로 관객들의 시선을 사로잡았으며, 서점가에서는 연애 관련 책들이 봇물 터지듯 출시되고 있다. 날씨만큼 후끈 달아 오른 연애 탐구 시대를 조명했다.

◆지금 서점가에서는

폭염주의보가 발령된 이달 4일 오후 영풍문고 대구삼성금융프라자점. 무더위를 피해 독서 피서를 온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곳이 있었다. 바로 '남녀 사랑 이야기' 코너. 연애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반영하듯 연애서들이 버젓이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었다. 진열대에 올라 있는 책의 종류는 대략 20여 가지. 사람들의 시선이 잘 닿지 않는 진열대 밑에 꽂혀 있는 책을 합치면 40, 50종은 돼 보였다. 에세이, 자전적 소설, 심리분석서뿐 아니라 남자가 여자를 유혹하는 방법, 여자가 남자의 시선을 끄는 방법을 소개한 책까지 다양했다.

'악마의 연애술-그를 내 남자로 만드는 긴자의 법칙 133' '남녀 탐구생활' '솔로 탈출 매뉴얼' '남자의 90%는 나쁜 여자에게 끌린다' '매혹의 기술' '내 남자의 속마음' '연애 시크릿 레시피' 등 연애서답게 대부분 자극적이고 감각적인 제목을 달고 있었다.

내용도 도발적인 경우가 많았다. '연애 빼고 다 잘하는 여자를 위한 마지막 연애 실용서'라는 부제가 붙은 '연애하려면 낭만을 버려라'는 지난해 10월 출간된 연애지침서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는 전략이었다'의 속편이다. 서두에 '전작이 갖고 싶은 남자에게 어떤 매력을 드러내고 섹시하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한 기초 가이드라면 이 책은 심층 가이드'라고 밝히고 있다.

아예 돈 많은 남자를 타깃으로 설정한 뒤 그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노하우를 공개한다는 책도 있다. '연애 시크릿 레시피'는 부자남을 만날 수 있는 행운의 직업부터 부자를 한 방에 쓰러뜨리는 치명적인 무기 2가지, 부자남을 품안으로 쓰러뜨리는 피니시 펀치 3방 등의 처방(?)을 앞세워 여심을 자극하고 있다.

서점 측이 연애서 코너를 만든 건 여러 종류의 연애서를 한자리에서 비교하면서 구입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젊은 고객들의 요구를 반영한 것이다. 영풍문고 대구삼성금융프라자점 한 관계자는 "요즘 젊은 세대들은 연애문제를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상담하거나 책을 통해 해결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구매력이 있는 20, 30대 여성의 미혼 기간이 길어진 것도 연애지침서가 꾸준히 팔리고 있는 이유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방자전…연애 탐구 바람의 또 다른 진원지

관객 300만 명을 돌파한 영화 '방자전'은 연애의 기술이 새삼 강조되는 최근의 경향과 관련이 있다. '방자전'을 본 관객들은 하나같이 연애 기술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방자전'에 나오는 연애 기술을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지만 기술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분위기다. 엄격한 신분 사회인 조선에서 방자가 춘향의 마음을 사로잡은 원동력이 바로 기술이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 방자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작업의 고수 마 영감을 스승으로 모신다. 마 영감은 무려 2만 명의 여자와 잠을 잔 전라도 한량 장판봉의 제자. 그가 방자에게 춘향을 꼬드길 때 사용하라고 가르쳐 준 비법에는 '툭 기술'과 '뒤에서 보기' 등이 있다. '툭 기술'은 마 영감이 소싯적 무수한 여인을 상대로 사용한 필살기다. 여성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던지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빠르게 손을 뻗어 여성의 신체를 '툭' 하고 만지는 스킨십 기술이다.

'뒤에서 보기'는 직접적인 신체 접촉 없이 상대 여성을 뒤에서 노려보다 재채기 한번으로 상대방을 뒤로 눕히는 기술이다. 극중에서 춘향은 방자의 뜨거운 시선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비법은 극중에서 제대로 통해 방자는 꿈에 그리던 여인 춘향의 사랑을 얻는다.

하지만 '방자전'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는 연애의 기술만이 아니다. 정략적으로 춘향을 이용한 몽룡에 비해 춘향을 향한 방자의 사랑은 진심이었다. 그 사랑을 이루게 해 준 것이 기술이었다. '기술이 여심을 파고들기 위해서는 진정한 마음이 뒷받침돼야 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애의 기술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실한 마음이다.' '방자전'이 던지고 싶은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불경기일수록 연애 욕구가 강해진다(?)

요즘 20, 30대 젊은이들이 의존하는 연애상담사는 영화·드라마 또는 서점 판매대를 가득 채운 각종 연애지침서다. 영화 '방자전'에서 볼 수 있듯이 조선시대 연애 기술은 주로 사람을 통해 전해졌다. 1970, 80년대에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은 음성적으로 유통되던 야한 잡지가 연애 기술의 배움터였다. 하지만 매스미디어가 발달하고 성문화가 개방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음지에 머물러 있던 성문화가 양지로 나오면서 연애지침서들이 쏟아져 나왔고 영화와 드라마의 성적 표현 수위도 높아졌다. 자연스럽게 책과 미디어가 연애 상담사 역할을 맡게 됐다.

연애서들이 많이 출간되는 현상이 경제상황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경기가 나쁠수록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경향이 강해진다는 것. 류재필 교보문고 대구지점장은 "요즘 연애 관련 책들의 잇단 출간은 시기적 요인과 연관이 있다. 학생들이 방학을 하고 사람들이 피서를 떠나는 여름철에는 일반적으로 청소년 문고나 소설 등이 많이 팔린다. 하지만 올여름에는 연애서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경기 영향으로 생각된다. 취직도 잘 안 되고 먹고살기가 힘들어지면서 심리적·경제적 안정을 찾기 위해 이성에 관심을 갖는 청춘 남녀들이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경달기자 sarang@msnet.co.kr 사진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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