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雲門서 華岳까지](32)300m대 능선 위의 다섯 고개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 해발 500m 가까운
청도군 금천면 소천리 해발 500m 가까운 '함박등' 기슭에 자리한 '생미'마을. '산양'(山陽)이라는 또 다른 이름의 이미지와 매우 잘 어울린다. 토박이 30여 호에 외지인이 10여 호 된다는, 고급 전원주택촌 같은 마을이다.

앞서도 봤듯, 가척재는 비슬기맥 최저 구간의 시점이라는 점에서 다시 한 번 주목할 지형이다. 그 낮은 구간에선 최고점 높이래야 300m도 채 안 되기 일쑤인 능선이 12㎞(육동구간 3.3㎞ 포함)에 걸쳐 이어진다. 결코 만만찮은 비슬기맥이 여기서만은 동네 야산으로 엎드린 형세다.

저 낮은 능선에는 묘하게도 약 2.5㎞마다 고개가 나 있는 점도 눈여겨둘 만하다. 가척재~비리재(비오재), 비리재~곱돌이재, 곱돌이재~당미기, 당미기~갈재 간이 그렇게 나뉜 단락이다. 그 사이를 걷는 시간 또한 각 50분 전후로 비슷비슷하다. 답사에 활용하기 좋은 지표다.

비리재(비오재)는, 용성면을 한눈에 굽어볼 수 있다고 했던 351m봉서 내려서는 잘록이다. 지형도의 등고선으로 읽히는 그 높이는 230m다. 하지만 현지엔 248m라 표시돼 있다.

헷갈리는 것은 그것만도 아니다. 비리재 이후엔 산줄기 파악이 매우 어렵다. 재를 지난 뒤 과수원을 통과해 남동쪽으로 서서히 상승하게 되나, 그 길로 쭉 따라가서는 실패다. 그건 육동 구간을 마감하고 경산-청도를 가르는 가지산 줄기이기 때문이다. 그 이후 육동지구 담장 역할은 그것에 맡기고 비슬기맥은 육동 영역을 벗어난다.

그런 사실을 눈치 챈 등산객들 중에는 북서편에 그만한 높이로 솟은 산줄기를 비슬기맥인 줄 여겨 좇아가려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고생길이다. 그 또한 곡란리 일대의 복잡한 지형을 형성하는 가지산 줄기 중 하나일 뿐이다.

비슬기맥은 주변의 저런 높은 지릉들에 묻혀 어디로 연결돼 가는지 보이지조차 않는다. 찾아볼 곳은 그 두 지릉을 연결하는 산줄기 너머에 골짜기같이 푹 꺼져 있는 곳이다. 희한하게도 비슬기맥은 그 속으로 마치 계곡인 양 엎드리고 숨어서 맥을 이어간다. 이 부분에서만 능선 흐름을 잘 짚으면 다음의 곱돌이재까지는 큰 어려움 없이 이어갈 수 있다.

곱돌이재(210m)는 오랜 세월 청도 운문면을 경산과 가장 빠르게 이어줘 온 길목이라 했다. 그걸 넘어 운문면의 많은 청소년들이 경산으로 유학 가고, 어른들은 자인장을 왕래한 것이다. 숱한 사연이 쌓였을 터이다.

그런데도 이 중요한 재의 국가기본도 상 이름 또한 매우 헷갈린다. '대천고개'(곡돌내재)라 써 뒀으나 그런 이름을 아는 이가 없는 것이다. 경산 쪽서 넘어봐야 겨우 도달하는 게 '소천리'인데 그게 어떻게 대천고개냐고 했다. 소천 쪽에서는 그걸 오직 '곱돌이재'라고만 했다. 그 너머 처음 닿는 경산의 곡란리 쪽 땅 이름이 바로 '곱돌이'고 그곳 저수지가 '곱돌이못'이라는 얘기였다.

곱돌이라는 말은 도로나 물길이 굽어 돌기를 곱(2배)으로 한다고 해서 생긴 것 아닌가 생각됐다. 그곳 양편에서 산덩이 두 개가 교대로 튀어나옴으로써 물길과 사람길이 그걸 피하느라 반원을 그린 후 다시 반대로 반원을 그리며 곱돌이하기 때문이다. 이 재 북사면에는 지금 꿩 농장들이 들어서 있다.

곱돌이재와 다음의 '당미기'(200m) 사이에서 비슬기맥이 남·북 간을 오르내리는 모습은 말 그대로 질매 혹은 갈매기 혹은 체크무늬 같다. 곱돌이재서 남서쪽으로 진행해 20여 분 만에 307m봉에 이른 뒤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꿔 당미기까지 이어가는 것이다. 그 여정에는 꿩 농장과 채석장 등이 순서대로 포진했다.

방향 전환점인 307m봉은 상당히 의미 있는 한 지릉 출발점이다. 서편 동곡천과 그 지천(支川)인 동편 부일천을 가르는 분수령 능선이 그것이다. 그 최고점 높이는 500m에 가깝고 길이 또한 5㎞를 넘는다. 능선 서편에는 금천면 사전리(四田里), 동편에는 금천면 소천리(小川里) 넓은 공간이 분포한다. 소천리 물은 앞서 본 육동 물과 만나 '부일천'을 이룬다.

하지만 307m봉서 저 분수령으로 이어 걷기는 수월찮다. 길 찾기부터가 어렵다. 최고점인 498m봉을 포함한 해발 480m대의 최고 구간 끝 지점에 이를 때까지 계속 그렇다.

도달하는 데 80여 분 걸리는 그 최고점 산덩이를 동편 생미마을(소천2리)에서는 '함박등'이라 불렀다. 올라서면 맑은 날 대구 달성공원이 보인다는 얘기도 했다. 북서 방향으로 80리 이상 떨어져 있는 두 지점 간에 더 이상 높은 봉우리가 없다는 말일 것이다. '함박'은 많이 쓰이는 산봉 이름으로, 통나무의 속을 파내어 만든 큰 바가지 같은 '함지박'의 준말이라고 사전에 설명돼 있다.

다시 비슬기맥 본맥으로 되돌아 와, 307m봉을 지나고 조금 더 높은 327m봉을 거쳐 내려서면 '당미기'다. 해발 200m. 남쪽 청도 금천면 갈지리 '갈마리마을'과 북쪽 경산 용성면 용산리 사이를 잇는 재다. 꼭짓점에 옛날 당집이 있어서 저런 이름이 붙었고, 갈지리 쪽 사람들이 용성장으로 내왕하던 고개라 했다. 지금은 임도 겸 농로가 통과하는 제법 큰 길목이 돼 있다.

이 '당미기'와 다음의 '갈재'(170m) 사이 비슬기맥 구간은 최고봉 높이조차 304m밖에 안 될 정도로 낮다. 그러나 304m봉 다음의 295m봉서는 경산 용성면을 마감하는 뜻있는 지릉이 북으로 뻗어나간다. 구룡산 이후 동·서 간 10여㎞(직선거리)에 걸쳐 펼쳐져 온 용성면에 서쪽 담장이 쳐지는 것이다. 그 지릉의 상징은 '용산'(436m)이며, 지릉 동편엔 용산리 마을, 서편엔 경산쓰레기매립장이 자리 잡았다.

갈재는 용산 능선 서쪽으로 펼쳐지기 시작하는 경산 남산면과 청도 금천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경산 동부와 청도 동부를 잇는 대표적인 길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갈고개'라는 이름으로 더 잘 통하는 이 재를 두고 마을 어르신은 "대구서도 줄곧 오르고 밀양서도 줄곧 올라야 하는 두 지역 간 가장 높은 고개"라고 했다. 하나 그 높이는 기껏 170m다. 고개라는 느낌조차 안 든다. 통행량이 적잖은 이유도 이것일 터이다.

당미기~갈재 구간 비슬기맥은 둥글게 굽어 돌면서 그 남쪽에 있는 갈마리 마을을 감싼다. 이 때문에 갈마리는 그 둥근 산줄기 안에 폭 싸여 갈재를 지나는 지방도에서 안 보인다. 갈재 서편으로 훤히 드러나 있는 '삼성' 마을과 대조적이다. 이 둘과 그 남쪽 '구터' '구복' 등의 자연마을이 청도 '갈지리'(葛旨里)를 구성한다.

갈재(갈고개)를 거친 뒤 비슬기맥은 대왕산 산덩이로 쳐 오르면서 12㎞에 걸친 300m대 능선을 마감한다. 그 구간을 오르자면 삼성 마을길을 지나자마자 한 과수원에 닿는다. 어느 날 그 앞에 이르니 외부인 접근을 거부하는 듯 금줄이 쳐져 있었다. 안 그래도 비슬기맥엔 산길을 꽁꽁 틀어막는 구간이 자꾸 느는 중이라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농막에 인기척이 있기에 소리쳐 양해를 구했더니 두말 않고 지나가라 했다.

고맙다고 인사했으나 주인은 당연한 일로 생각하는 듯했다. "산길도 길인데 지나다녀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산꾼에 나쁜 사람이 있겠느냐"고도 했다. 오랜만에 듣는 시원스런 말에 감동한 취재팀과 일행이 배낭을 벗어 놓고 막걸리를 한잔 권했다. 마침 과수원 끝머리에 예사롭잖게 큰 나무 두 그루가 길목을 지키고 서 있어 그냥 지나치기도 아쉬운 참이었다.

하지만 그는 술을 마실 줄 모르니 대신 저 나무들에게 먹이겠다고 했다. 본인 스스로도 매년 상당량의 막걸리를 사다가 뿌려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땅은 내 것이지만 나무는 윗대 어른들이 심은 것이고 우리 마을과 행인 모두의 것"이라고 했다. 모두가 함께 그 밑에 쉬고 함께 정을 주자는 뜻이었다.

그는 스스로를 한미한 계층이라고 낮춰 소개했다. 그러나 저런 마음씨와 세상을 보는 눈은 누구도 쉽게 가질 수 있는 게 아닐 터이다. 오랜만에 푸근한 걸음이 됐다.

글 박종봉 편집위원

사진 정우용 특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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