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엄창석의 뉴스 갈라 보기] 교육과 정치 사이

지난번 6'2지방선거가 우리 사회에 던진 가장 큰 질문은 서로 다른 정치 이념과 교육이 어떻게 병존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선거 기간에는 대체로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지 않았으나 그 결과는 엄청난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기존의 교육관과 상이하거나 정반대의 지점에 서 있는 인사들이 거의 절반에 가깝게 등장한 때문이다. 그동안 다른 정치적 이념이 교단 한 모퉁이에 상존했고 또한 개별 교사에 의해 산발적으로 행사되긴 했으나 제도권 안에서 주도권을 가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던 것이 진보 측 인사가 각 지역의 교육 수장이 됨으로써 정치이념과 교육의 문제는 피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핵심적인 과제로 떠올랐다.

실제로 선거 이후, 진보 진영의 교육감이 뽑힌 지역을 중심으로 오랫동안 잠복해 있던 시빗거리나 모순처럼 보이는 문제들이 여지없이 돌출되고 있다. 물론 이런 시빗거리들은 일차적으로 개별 교사들의 정치 행위를 허용하느냐 마느냐의 문제, 학생들을 어떻게 가르치느냐 등 지금까지 있었던 문제였지만 앞으로는 보다 근본적인 교육관에서 비롯된 충돌을 우리는 목격해야 될 것 같다.

최근 한나라당 서상기 의원이 설문조사한 내용에 따르면 앞으로 그 충돌의 파열음이 심상찮으리란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겠다. 전국 178개 지역 교육청의 교육장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내'가 어느 진영에 속해 있느냐를 따져볼 겨를도 없이 가히 놀랄 만하다. 학생들의 무상급식, 학업성취도평가, 교사의 정당 가입, 학생인권조례, 교원 평가 등 주요 사안에 대해서 진보 측 교육감과 거의 완전하게 상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가령 서울 교육청의 교육장들은 학업성취도평가에 대해 100% 찬성을 하는 반면 이번에 선출된 교육감은 이에 반대한다. 한 지역의 교육청 내부는 물론이거니와 우리나라 전체를 넣어서 살펴보면, 주요 사안에 대해 100%에 육박하는 찬성과 100% 반대하는 교육계 수장이 함께 교육을 책임지게 된 것이다.

말할 나위도 없이 교육은 가장 기본적인 사회화의 과정이다. 나라의 정체성과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담겨 있다는 점에서 교육계 수장들 사이의 상치된 이념은 어떤 형태로든 조율되어 교육관에 대한 합의점을 찾지 않으면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민주주의 사회는 다양한 견해가 같이 있어 갈등, 충돌하면서 구성원들이 자기 이익을 실현하는 체제지만 교육에 이르면 이러한 정치적 갈등은 적절치 않을뿐더러 정치적 타협도 참된 교육의 실현과 거리가 멀다.

특히 교육에서 정치의 개입이 우려되는 것은 보수 측이든 진보 측이든, 자기의 이념적 가치보다 당파성을 기꺼이 노출하는 우리 사회의 패거리 의식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진영과 결부되는 문제에 대해서는 개별 사안이 맞다 틀리다는 것보다 당파적 판단에 의존하는 고질적인 성향은, 교육이 현실정치의 논리로 좌우될 수 없는 뚜렷한 이유가 된다.

교육은 한 사회의 이상을 실현하는 근본적인 도구이자 과정이다. 고대 그리스부터 중세와 근대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는 자신에게 맞는 교육 체계를 마련하고 이를 수행해왔다. 이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변화를 교육 속에 어떻게 담느냐로 그 나라의 미래가 결정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교육 및 교육관은 그 사회가 갖는 가장 순수한 이념적, 미래 지향적 합의(合意)이다. 역사적으로 연방제가 정착된 미국 같은 나라는 각 연방마다 고유한 특징이 있어서 서로 다른 정책을 취하기도 하지만 우리 같은 작은 나라가 지역에 따라 교육지표가 다르다는 것은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교육이 한 사회가 갖는 순수한 미래 지향적 합의라는 것에 동의한다면, 이번에 등장한 진보 측 교육감으로 인해서 우리 교육의 해묵은 과제와 모순이 송두리째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해서는 안 될 것 같다. 바야흐로 교육에 관해 전면적인 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 사회가 빠른 시일 안에 이 대화의 장을 마련해야 하는 이유는, 합의를 간과(看過)하거나 실패할 경우 개별 학생들이 받을 피해도 물론이거니와 우리 사회의 미래가 심각하게 균열되기 때문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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