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TV 영화를 보자] EBS 한국영화 특선 '충녀'

본처가 보낸 집에서 기이한 일만 일어나…'하녀' 김기영감독 작품

EBS 한국영화 특선 '충녀' 8일 오후 10시 50분

명자(윤여정)는 어머니를 비롯해 외할머니까지 첩의 신세였던 집안에서 태어나, 아버지를 본처의 집에 빼앗긴 것에 대한 상처를 갖고 있다. 오빠와 남동생의 학비와 생계를 위해 호스티스가 된 명자는 마담(박정자)의 주선으로 김동식(남궁원)을 소개받고 순결을 빼앗긴 후 첩으로 삼아달라고 애원한다. 성공한 사업가인 동식의 본처(전계현)는 남편의 성불구를 치료하기 위해 명자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생활비를 지급하는 대신 자정까지는 집에 돌아오도록 하는 규정을 만든다. 명자가 단란한 가정을 꿈꾸며 아이를 원하자 본처는 남편에게 약을 먹여 정관수술을 시키고 그들을 이층집으로 이사시킨다. 이사 후 새집에서 명자는 이상한 일들을 계속 겪게 된다. 냉장고 안에서 갓난아기가 나오는가 하면 이사 첫날 동식의 딸(김주미)이 선물한 쥐가 엄청나게 번식해서 나타나고, 아기가 쥐를 잡아먹거나 하수구로 들어가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더니, 급기야 아기가 사라지자 명자의 히스테리는 극에 달한다.

'하녀'와 함께 가부장제 가족 내에서 남성의 무능과 여성의 욕망 등을 주로 그린 김기영 감독의 주요 작품이다. 가정의 생계를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던 젊은 여성의 호스티스 멜로인 듯 시작되지만 중반으로 갈수록 공포 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내다가, 후반에 엽기적인 스릴러 혹은 판타지로 보이는 등 장르를 넘나든다.

영화의 중반 이후 등장하는 '알사탕 정사 장면'은 소도구를 직접 선택, 제작하는 것으로 알려진 김 감독의 개성이 잘 살아나는 대목이다. 오색빛깔의 사탕색깔과 조명, 사탕이 유리판에 부딪치면서 내는 사운드, 몸에 달라붙는 촉각적 끈적임 등이 김 감독의 '살인나비를 쫓는 여자'의 '뻥튀기 기계 정사장면' 과 함께 기묘한 섹슈얼리티를 발산해 컬트 팬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蟲女'라는 제목과 영화에 등장하는 교미후 수컷을 잡아먹는 암컷 사마귀에 대한 공포 등에서 드러나듯 해부학적 접근은 권위를 상실한 퇴행적 남성상과 부르주아 가정에 만연한 위태로움 등을 외과 수술을 하듯 도려내어 보여준다. '충녀'는 우리나라 공중파 사상 최초의 방송이고 원본 필름이 유실돼 스페인어 자막본으로 방영된다. 1972년 작, 영화 길이 115분.

이종규기자 jongku@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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