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행복을 요리하는 의사] 꿈의 신, 모르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신이 인간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을 와인이라고 했다. 하지만 신이 인간에게 준 아름다운 선물은 '모르핀'이라는 것을 호스피스 의사가 되면서 알게 되었다. 신의 선물, 모르핀은 죽음의 공포보다 더 끔찍한 암성 통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준다.

모르핀은 1803년 독일의 세터너(Serturner)가 꿈의 신인 몰페우스(Morpheus)의 이름을 따서 만든 것으로, 말기 암환자의 통증 조절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약물이다. 마약성 진통제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일반적으로 모르핀은 마약성 진통제의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다.

암성 통증이 심해져서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기 시작할 때 환자와 가족은 여러 가지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마약중독자가 되지 않을까? 나중에 많이 아프게 되면 쓸 수 있는 약이 없지 않을까?"라고 질문하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통증을 가진 환자는 마약성 진통제를 사용하여도 마약 중독에 대한 위험률이 지극히 낮다. 자료에 따르면 환자 1만 명 중 2명 미만의 환자만이 중독을 나타낸다고 하며, 이것은 골프 초보자의 홀인원 확률과 같다.

이렇게 마약성 진통제는 마약이 아니라는 오해를 설명해줘야 환자는 안심하고 통증조절을 시작할 수 있다. 경험상 죽음이 임박해오면 암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잘 조절되던 통증도 갑자기 심해진다. 모르핀은 다른 진통제와는 달리 용량이 증가할수록 효과가 같이 증가하는 신비한 약이다. 고통 없이 삶의 마지막 나날을 보낼 수 있다. 그래서 신의 아름다운 마지막 선물이 모르핀인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암으로 심한 고통을 받는 환자 480만 명과 말기 에이즈 환자 140만 명이 적절한 고통 경감치료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했다. 2005년 통계를 보면 미국, 캐나다, 프랑스, 독일, 영국, 호주 등 6개국이 전 세계 모르핀의 79%를 소비했다.

반면 세계 인구의 80%가 사는 중하위권 국가의 모르핀 소비 비중은 6%에 그쳤다. 부자나라 환자들이 고통을 덜 받는다는 것이다. 2005년 기준 한국의 인구당 모르핀 사용량은 호주의 152분의 1, 일본의 11분의 1로 사용량이 선진국에 비해 미미한 수준이었다. 분명 한국인이 고통을 잘 참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그만큼 아프면서 죽는다는 것이다.

14명이 입원하는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 평온관이 생긴 뒤, 대구의료원의 모르핀 사용량은 그 전보다 10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병동에 입원한 환자가 갑자기 돌발성 암성 통증이 생겼을 때, 마약성 진통제가 원내약국에 있는 마약금고에서 병동까지 얼마나 빠른 시간에 공급될 수 있는지 호스피스 의사로서 늘 관심이 많다. 호스피스 병동의 존재는 암성 통증 조절에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마약성 진통제의 신속한 공급이 무엇보다도 우선이다. 호스피스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의사도, 간호사도, 봉사자도, 성직자도 아니다. 신의 선물, 모르핀이다.

김여환 대구의료원 호스피스·완화의료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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